항목 ID | GC04204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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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圭用 |
영어음역 | Choe Gyuyong |
이칭/별칭 | 금당(錦堂),다성(茶星)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대철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차 문화 연구가이자 다도 보급가.
[활동 사항]
최규용(崔圭用)[1903~2002]은 경상남도 통영시 용남면 우전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금당(錦堂)이다. 1924년에서 1930년까지 조선총독부에서 토목 기사로 근무하였으며, 1925년 5월에 부산 영도 다리 설계에 참여하였다. 일본 유학 시절 차를 접한 이후 다도 생활을 평생의 반려로 삼게 되었는데, 1938년 중국 상하이[上海]에 사업 차 머물며 저장성[浙江省]·항저우[杭州]·톈무산[天目山] 등지를 여행하며 대륙의 차 문화를 연구하기도 하였다.
1946년 귀국한 최규용은 한국의 차 역사를 공부하며 차 산지를 돌아다니면서 차와 관련된 문헌 등을 찾아 본격적인 차 문화 연구에 몰두하였다. 해인사(海印寺) 선방(禪房)에서 2년 동안 참선 수도하며 차 문화가 불가(佛家)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알고 사원차(寺院茶) 연구에 심취하여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기도 하였다.
1952년에 해인사 경판고·장경각·퇴설당 보수 공사에 참여하였다. 고건축, 고미술, 민예품 등에 대한 조예가 깊어, 1965년 부산에 고려민속공예학원을 설립하여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에 금당차회(錦堂茶會)를 조직하여 다도 문화 교육을 시작하였고, 1983년 한국차인연합회(韓國茶人聯合會) 고문을 맡으면서 전국적인 전통 문화 운동에 깊이 관여하였다.
1987년에는 중국 항저우 저장대학[浙江大學]과 한국·중국 문화 교류에 앞장섰으며 1987년에 창립된 한국차문화회(韓國茶文化會) 상임 고문을 비롯한 여러 차 문화 단체에 관여하여 한국 차문화계의 정신적 지주로 숭앙받았다. 1988년에 한국육우다경연구회(韓國陸羽茶經硏究會)를 창립하여 중국의 육우(陸羽)가 지은 『다경(茶經)』을 연구하며 동양 차 문화의 근본을 정리하기도 하였다. 이에 1989년에 중국차문화연구회로부터 ‘다성(茶星)’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금당은 중국 국제차문화교류회 등의 중국 차 문화 단체에도 고문을 맡아 국제적인 차인(茶人)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1988년 해인사에서 승려 일타(日陀)·석정(石鼎)과 함께 조주 선사(趙州禪師)의 화두(話頭) ‘끽다거(喫茶去)’와 대거되는 ‘끽다래(喫茶來)’란 신조어를 만들어 평생을 차 마시기 운동의 지침으로 삼았다. 끽다래와 금당 최규용의 유명한 차 이야기가 있어 그 내용을 글귀로 새긴 기념비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기념비는 1997년 부산진구 초읍동의 삼광사(三光寺) 뜰과 1999년 해인사 지족암에 건립되었다.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국제 차 문화 교류의 다리를 놓은 업적으로 중국인들에 의해 차문화 교류 공덕비가 세워졌는데 1998년 중국 항저우 서호(西湖) 부근의 차인지가(茶人之家)와 2000년에 후베이 성[湖北省] 후저우 시[湖州市]에 ‘끽다래비’가 세워졌다.
2008년에는 한국 제자들에 의해 서구 서대신동 3가 구덕 문화 공원에 금당 다비(錦堂茶碑)가 세워져 매년 추모 헌다례가 진행되고 있다. 2005년 중국 허베이 성[河北省] 백림선사(栢林禪寺)에서 열린 세계 선차 문화 교류 대회(世界禪茶文化交流大會)에서 「조주의 끽다거(喫茶去)와 금당의 끽다래(喫茶來)」라는 주제의 논문이 발표되어 여러 나라 차 문화인들에게도 끽다래의 정신이 알려졌다.
최규용은 『다경』의 정신인 ‘정행검덕(精行儉德)’을 차 생활의 기본으로 삼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생활 차 운동을 이끌며 풍류차(風流茶)를 즐겼던 차인이었다.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 등을 연구하면서도, 차 문화 탐구는 『다경』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다도 문화를 주도했던 한국 근현대 시기의 저명한 차 문화 운동가였다. 최규용은 금당 다우(錦堂茶宇)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평등과 검소함의 다도 철학을 가르쳤다. 최규용은 2002년 4월 5일 부산 송도 바다가 보이는 금당 다우에서 100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장례는 부산차인연합회장(釜山茶人聯合會葬)으로 치러졌고, 사리 36과가 수습되었다. 유골은 유언대로 통영의 선산에 뿌려졌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금당 다화(錦堂茶話)』, 『현대인과 차』, 중국 차 문화 번역서인 『다소(茶疏)』 그리고 『중국차 문화 기행』 등이 있으며 2004년에 선고다인총서란 이름으로 다시 재출간한 『금당 다화』가 있다. 또 자필로 쓴 「동다송(東茶頌)」 원문 글씨 가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1993년 초의(草衣) 학술상과 1996년 명원(茗園) 학술상을 받았다. 매년 봄에 부산 구덕 문화 공원 금당 다비 앞에서 ‘금당 선생 추모 헌다식’이 치러지고 있다. 또한 부산차문화진흥원에서도 매년 가을 최규용을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