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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255
한자 秋乃有
영어음역 Chu Naeyu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251번길 29[초량동 14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경제인
성별
대표경력 추내유상점 대표
활동 시기/일시 1916년 - 부산상업회의소 평의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기미육영회, 부산예월회 회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3년 - 부산부 협의회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부산청년회 회원으로 활동
활동지 추내유상점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146지도보기
활동지 남선창고주식회사 - 부산광역시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인.

[활동 사항]

추내유(秋乃有)는 부산의 개항과 함께 성장한 초량 객주였다. 초량 객주는 부산 인근의 하단포 객주, 구포 객주와 함께 부산항의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초량 객주는 함경도와 강원도에서 명태 등을 교역하다 부산에 정착한 상인과 부산 출신의 상인들로 구성되었다. 추내유도 그 중 한 명이었으며, 점차 자본을 축적하여 1906년(고종 43) 추내유상점을 설립하였다. 추내유상점은 초량에 설립되었고 자본금 규모는 1927년 당시 4만 원이었으며, 주로 잡곡과 해산물 무역에 종사하였다. 그런 가운데 추내유는 초량 객주들의 동업 조합인 초량객주조합의 조합장을 비롯하여 남선창고주식회사 취체역을 역임하였으며, 1916년 일본인과 통합된 부산상업회의소에서 평의원에 당선되어 2년간 활동하였다.

한편, 추내유는 3·1 운동 이후 안희제(安熙濟)를 비롯한 부산 지역 조선인 자본가들이 중심이 되어 1919년 11월 조직한 문화 운동 단체인 기미육영회에도 관여하였다. 기미육영회는 매년 10명씩 인재를 선발하여 중국, 일본, 미국 등 해외로 유학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1920년 봄 이후 경제 공황으로 회원의 부담금 수납이 여의치 못하여 기미육영회 사업은 1921년부터 지속되지 못하였다.

추내유는 부산 지역 조선인 자본가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조직한 또 다른 조직인 부산예월회(釜山例月會)에도 가입하였다. 부산예월회는 조선인 상공업의 발달과 조선인 교육 개선을 위한 실력 양성 운동의 추진 기구로 조직되었기에 주로 조선인 자본가 층의 견해와 요구 조건을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 대표적인 활동이 동래 지역 유지들과 함께 조선교육개선기성회를 조직하고 조선총독부의 조선교육조사위원회에 교육 개선 건의안을 제출하는 것 등이었다. 부산예월회기미육영회와 마찬가지로 1921년 후반부터는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한편 추내유는 1920년 말 결성된 부산청년회 회관이 1924년 부산제2금융조합의 경매로 넘어갈 상황에 처하자 동정금을 내어 청년회의 해체를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1920년대 전반까지 문화 운동에 어느 정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추내유는 실력 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 운동에 가담하는 한편, 정치적으로는 일제에 타협하는 행보도 걷기 시작하였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 정치와 조선인 자본가 포섭 정책의 일환인 지방자치제의 실시는 일부 조선인 자본가 층의 부산부 협의회, 학교 평의회, 기타 관변 단체로의 진입을 허용하였다. 추내유도 이에 따라 1923년 11월 부산부협의회원 선거에서 50표를 획득하며 당선되어 2년간 부산부협의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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