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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189
한자 李光昱
영어음역 Yi Gwanguk
이칭/별칭 지전(芝田),영서(英瑞),지실(芝室),소동강(小東崗),이참서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94번길 36-6[수안동 510-1]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동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관료|교육자
성별
본관 연안|안산
대표관직|경력 외부 참서관|동명학교 교장
출생 시기/일시 1860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8년 - 중추원 3등 의관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1년 - 동래감리서 주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2년 4월 26일 - 삼화감리서 주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2년 - 외부 주사에 임명, 외부 참서관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동명학교 설립 청원자 대표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동명학교 교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9년 - 동명학교 대표자가 됨
활동 시기/일시 1909년 - 동명학교 교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10년 4월 - 동래기영회 가입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동래군 읍내면 옥천동 - 부산광역시[구 경상남도 동래군 읍내면 옥천동]
활동지 동래감리서 - 부산광역시
활동지 삼화감리서 - 부산광역시
활동지 외부 - 부산광역시
활동지 동명학교 - 부산광역시지도보기

[정의]

근대 부산 동명학교의 설립을 주도한 관료이자 교육자.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또는 안산(安山). 자는 영서(英瑞), 호는 지전(芝田)·지실(芝室)·소동강(小東崗). 고조 할아버지는 이덕년(李德年)으로, 서울에서 동래로 이주하였다. 증조 할아버지는 장관청 초관 이인철(李仁喆)이고, 할아버지는 장관청 중군·부청 선생 등을 지낸 이학언(李學彦)이며, 아버지는 장관청 중군·수첩청 별장 등을 역임한 이우형(李雨亨)이다. 형은 이장욱(李章昱)으로 장관청 중군·부청 선생 등을 지냈다. 이광욱의 가계는 동래 지역의 대표적인 무임(武任)[군사 및 치안 담당 장교], 이임(吏任)[호적에 관한 일과 공공사무를 맡아보던 향리] 집안으로, 여러 사람이 무임 최고직인 중군[지휘관]과 상급 향리인 부청 선생을 지냈다.

[활동 사항]

이광욱(李光昱)[1860~?]은 1860년(철종 11) 이우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1년(고종 38) 동래감리서 주사, 1902년 4월 삼화감리서 주사가 되었다. 5월 외부 주사[판임관 2등]에 이어 9월에 외부 참서관[주임관 6등]으로 승진하였다. 해당 관청의 주무 대신이 위임을 받아 임명하는 판임관에서, 주무 대신이 임금의 승낙을 받아 임명하는 주임관으로 승진한 것은 이광욱에게 큰 영광이었다. 이광욱은 문집 『지전집(芝田集)』에서 “외부 참서관이 된 것은 남의 도움으로 승진하였다는 비방을 면하기 어렵다”고 토로하였다.

감리서 주사, 외부 주사, 참서관 경력으로 보아, 이광욱은 개항장에서 주로 일본 등 외국과의 통상 실무를 담당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외부 참서관은 이광욱이 맡았던 최고 관직이었다. 따라서 퇴임한 후에도 각종 기록에 ‘전(前) 참서관’이라는 호칭이 붙어 다녔다. 동래 지역에서 ‘이참서’라고 하면, 으레 이광욱을 지칭할 정도였다. 1906년(고종 43) 대한자강회 동래지회 회원이 되었다. 이광욱의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동명학교(東明學校) 설립과 운영에 관한 일이다. 이광욱은 1907년(순종 1) 12월 동명학교 설립을 청원하는 대표자로 나섰고 1908년 1월 동명학교 교감, 1909년 10월 동명학교 대표자, 12월에는 3대 교장에 취임하였다. 1923~1924년에는 동래은행[1918년 설립]의 주식 100주를 소유한 주주였고, 1900년대 후반 설립된 동래민의소(東萊民議所)의 설립과 운영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학문과 저술]

동래 지역에서 이광욱의 명성은 이상흔(李相昕), 윤병철과 함께 동래부의 세 명사 중 한 사람으로 불릴 정도였다. 이광욱은 추호(秋湖) 박필채(朴苾彩), 경암(耕巖) 문성준(文聲駿), 회원(晦園) 양재일(梁在日) 등과 개항 이후 동래 지역의 지식인 사회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한학과 경사에 정통하여 명망이 높았으며, 상당한 양의 책을 소유한 장서가였다. 이광욱의 장서 1,400여 권이 부산대학교 도서관 고전 자료실에 ‘지전 문고’라는 이름으로 소장되어 있다.

박필채가 쓴 『화동문선서(華東文選序)』에 의하면, 이광욱박필채와 함께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제자인 입헌(立軒) 한운성(韓運聖)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동래군지(東萊郡誌)』[1937]에도 이광욱은 공맹학(孔孟學)을 공부하고 홍직필의 학문을 추종하면서, 『중용 장구 집해(中庸章句集解)』, 『화동문선』, 『거려고』, 『혼례간요』 등을 저술하였다고 되어 있다. 또 『지전집』을 비롯하여 『지실만고(芝室漫稿)』, 『금고시가(今古詩家)』, 『옥수하고(玉樹賀藁)』 등을 저술하거나 편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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