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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177
한자 東萊社稷壇
영어의미역 an Altar to the State Deities of Dongna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407-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제단
건립 시기/일시 1640년연표보기 - 부사 정호서 건립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407-3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직단.

[개설]

사직(社稷)에서 사(社)는 토지의 신을, 직(稷)은 오곡의 신을 뜻한다. 즉 토지 신과 곡물 신에게 제사지내는 곳이 사직단이다. 신라가 중국의 사직단 제도를 도입한 이래, 역대 왕조는 사직단을 건립하였다. 1530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동래현의 서쪽에 사직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조(英祖) 때 저술된 『동래부지(東萊府誌)』에는 1640년(인조 18) 동래 부사 정호서(丁好恕)가 사직단을 건립하였고, 현종(顯宗) 때 동래 부사 이하(李夏)가 중창하였으며 1709년(숙종 35)에 동래 부사 권이진(權以鎭)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

동래사직단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407-3에 위치해 있었다.

[변천]

숙종(肅宗) 때 지금의 위치로 옮긴 사직단은 정당(正堂) 1칸, 재실(齋室) 5칸의 규모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방치되어 주택가로 변하여 흔적이 사라졌다. 2020년 1월에 복원 작업에 착수하여 이듬해 1월 27일에 신실(神室) 1칸, 재실(齋室) 4칸 규모로 완공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이 건국되면서 전국의 군현에 사직단을 건립하고 지방관에게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다. 이 사직단 제사는 왕의 교화가 해당 지방에 미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의례였다. 부산의 사직단은 동래 부사가 주관하였으며, 중춘(仲春)[음력 2월]과 중추(仲秋)[음력 8월] 두 차례 제사를 지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5.19 오자 수정 동래사직단는'을 '동래사직단은'으로 수정
2021.04.06 수정 항목명 사직단 터->동래사직단
2018.08.10 오자 수정 [의의와 평가] 중추(仲秋)[음력 9월]->중추(仲秋)[음력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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