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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166
한자 朴點實
영어음역 Bak Jeomsil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95-46[온천1동 산13-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경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화 예술인
성별
본관 밀양
대표경력 중요 무형 문화재 제18호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말뚝이 역]
출생 시기/일시 1913년 8월 16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8년 3월 - 삼가보통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49년 4월~1964년 8월 - 조선견직주식회사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70년 5월 17일 -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입회
활동 시기/일시 1976년 6월 30일연표보기 - 중요 무형 문화재 제18호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말뚝이 역] 인정
활동 시기/일시 1997년 5월 - 제26회 부산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서 개인상[동래 한량무]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98년 8월 7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밀양시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학교|수학지 삼가보통학교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활동지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1동 산13-3지도보기
묘소 낙원 공원 묘원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841-1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

[활동 사항]

박점실(朴點實)[1913~1998]은 1913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나, 합천군 삼가면에서 성장하였다. 15세 때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로 가 규슈[九州] 지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머물렀으며, 17세 때는 중국 둥베이[東北]의 하얼빈[哈爾濱]으로 가 말을 타기도 하는 등 젊은 시절에는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천성이 부잡스러워 잠시도 한군데 머물러 있지 못했다는 박점실은 1년 중 열 달을 외가가 있었던 부산 동래에 와서 살았다. 1949년부터 1964년까지 조선견직주식회사에서 근무하였고, 퇴사한 후 여러 가지 잡일을 하다가, 1970년 5월 17일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 문장원(文章垣)의 안내로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1세대 「동래 야류」 인간문화재 박덕업(朴德業)으로부터 「동래 야류」 양반 과장의 말뚝이 역 연기를 전수받았다.

박점실의 말뚝이 춤은 일정한 틀의 춤사위, 즉 정형적인 연기가 아니라 신명을 바탕으로 한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것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말뚝이 춤뿐만 아니라 한량무에도 능할 만큼 박점실의 춤 세계는 실로 다양하였다. 예를 들어 굿거리장단에 맞춰 장기를 두는 모습을 표현한 장기춤은 ‘장이야, 멍이야’ 하는 소리를 곁들이며 재미있게 추었다고 하는데, 역시 정형화된 춤보다는 장단을 타면서 신명을 중시한 즉흥적인 춤사위였다.

박점실은 제자 교육에 있어서도 실로 성실한 스승이었다. 박점실에게 말뚝이 역할을 전수받은 김수근은 박점실을 타협할 줄 모르는 곧고 강직한 성격, 한 치의 너그러움이 없는 엄격한 전수 교육, 땀을 뻘뻘 흘리며 교육하는 열정의 스승으로 기억하고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낙원 공원묘원에 마련되었다.

[상훈과 추모]

1976년 6월 30일에 중요 무형 문화재 제18호 「동래 야류」 예능 보유자[말뚝이 역]로 인정되었고, 1997년 5월에는 제26회 부산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서 개인상[동래 한량무]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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