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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122
한자 徐有大
영어음역 Seo Udae
이칭/별칭 자겸(子謙),무익(武翼),복장(福將)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산144 몰운대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우정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성별
본관 달성
대표관직 한성부 윤
출생 시기/일시 1732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57년 - 선전관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59년 - 사복시 내승에 임명,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63년연표보기 -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옴
활동 시기/일시 1768년 - 충청 수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83년 - 총융사에 임명
1797년 - 금위대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98년 - 정운공 순의비의 비문을 새김
활동 시기/일시 1799년 - 훈련대장, 한성부 판윤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802년연표보기 - 사망

[정의]

조선 후기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몰운대에 있는 정운공 순의비(鄭運公殉義碑)의 비문을 새긴 무신.

[가계]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자겸(子謙). 문정(文貞) 서성(徐渻)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서일수(徐逸修)이다.

[활동사항]

서유대(徐有大)[1732~1802]는 1757년(영조 33) 음직(蔭職)으로 선전관(宣傳官) 벼슬을 받고, 1759년 사복시 내승(司僕寺內乘)으로서 무과에 급제하였다. 1763년(영조 39) 훈련원 정(訓諫院正)으로 재임 중 통신사(通信使)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귀국 후 방어사, 겸사복 장(兼司僕將)을 거쳐 1768년(영조 44) 충청 수사에 임명되었다.

1783년(정조 7) 총융사(摠戎使)에 이어 훈련도감 중군, 좌포도대장, 어영대장을 거쳐 금위대장이 되었다. 우포도대장을 맡은 뒤로 금위대장, 훈련대장, 어영대장, 주사대장(舟師大將)에 올랐다. 총융사 4회, 어영대장 7회, 훈련대장 3회, 금위대장 7회 등 정조(正祖) 대에 군권을 장악한 핵심 인물이었다.

무관의 여러 고위직을 거치면서 남행(南行)[과거를 치르지 않고 조상의 공덕으로 벼슬을 받음] 출신의 무관 임명 문제에 대한 개혁안을 제시하였고, 직무를 잘못하여 강화부의 군졸로 강등되거나 고향으로 쫓겨나기도 하였다. 1797년(정조 21) 금위대장(禁衛大將)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몰운대 정상 부근에 있는 ‘정운공 순의비’의 비문을 새겼다.

1799년(정조 23) 한성부 판윤을 거쳐 1802년(순조 2) 훈련대장으로 재임 중 세상을 떴다. 서유대는 체격이 크고 성품이 너그러워 군졸들의 원성을 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유대를 복장(福將)이라 불렀다고 한다. 글씨도 잘 썼는데, 특히 대자(大字)를 잘 썼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무익(武翼)이다. 1802년 정순 왕후(貞純王后)서유대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기록이 『순조실록(純祖實錄)』에 실려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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