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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104
한자 趙世煥
영어음역 Jo Sewhan
이칭/별칭 의망(嶷望),수촌(樹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순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임천
대표관직 동래 부사
출생 시기/일시 1615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3년 - 사마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57년 - 식년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70년 - 진하 겸 사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옴
활동 시기/일시 1680년 6월연표보기 - 동래 부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81년 2월연표보기 - 동래 부사 퇴임, 전라 감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83년 - 승지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683년연표보기 - 사망
부임|활동지 동래부 동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421-56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의망(嶷望), 호는 수촌(樹村). 아버지는 참봉 조석(趙碩)이고, 어머니는 별좌(別坐) 이거인(李據仁)의 딸이다.

[활동 사항]

조세환(趙世煥)[1615~1683]은 1633년(인조 11)에 사마시에 급제하고, 1657년(효종 8)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이 되었다. 이후 예조와 병조의 좌랑, 황주 판관, 병조 정랑,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과 장령 등을 지냈다. 1670년(현종 11)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사헌부 집의, 사간, 무주 부사, 고성 현감 등을 거쳤다. 대구 부사로 있을 때 부패를 일소하고 절의를 권장하였다가 모함을 받아 파직당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품계가 올라가 그해 6월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동래 부사 재임 시 임금이 조세환의 가난한 살림을 걱정하여 특별히 금품을 내렸으나 그 돈을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에서 전사한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의 사당을 중수하는 데 썼다. 또 임진왜란 때 순절한 관노(官奴) 석매(石邁)의 자손들을 천민 호적에서 지워 주었다. 상고세(商賈稅)를 공정하게 거두어 큰 액수를 호조에 보냈고, 자신의 녹봉으로 가난한 백성의 세금을 대신 내 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6월에 왜관에 불이 나 관수가(館守家) 건물 48칸이 전소되자 비변사에 장계를 올려 왜관에 무명 3동과 쌀 50섬을 특별히 보내 달라고 청하였다. 1681년 2월 전라 감사에 임명되어 동래 부사직을 그만두었다. 1683년(숙종 9) 승지로 있다가 사직하고 향리에 내려가 머물던 중 임금의 병환 소식을 들었다. 이에 조세환은 눈바람을 무릅쓰고 상경하던 길에 신창(新昌)에서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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