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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098
한자 黃㦿
영어음역 Hwang Ho
이칭/별칭 자유(子由),만랑(漫浪)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문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창원
대표관직 동래 부사|성균관 대사성
출생 시기/일시 1604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6년연표보기 -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옴
활동 시기/일시 1640년 - 홍문관 부수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5년 - 어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5년 9월연표보기 - 동래 부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6년 8월연표보기 - 동래 부사 파직
활동 시기/일시 1648년 -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 『만랑집』, 『동사록』 저술
몰년 시기/일시 1656년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60년 - 신원됨
부임|활동지 동래부 동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421-56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자유(子由), 호는 만랑(漫浪). 할아버지는 호조 참의와 공조 참의를 지낸 황치경(黃致敬)으로, 성절사 종사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아버지는 목사 황수(黃瀡)이다.

[활동 사항]

황호(黃㦿)[1604~1656]는 1636년(인조 14) 통신사행 때 종사관으로 정사 임광(任絖), 부사 김세렴(金世濂)을 모시고 일본에 다녀왔다. 1640년 홍문관 부수찬을 거쳐 교리, 사헌부 장령, 사간원 사간을 지냈으며 1645년(인조 23) 어사로 영남 지방을 시찰하고 돌아와 그해 9월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이듬해 조선에서는 쓰시마[對馬]의 도주 의성(義成)이 에도[江戶]에서 참근 교대(参勤交代)[지방 영주들이 격년으로 에도에 머무르는 제도]를 마치고 돌아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역관 이형남(李亨男)과 한상국(韓相國)을 파견하였다. 이때 왜관의 우두머리인 관수왜가 쓰시마 도주 모친상의 조문을 청했으나, 조선에서는 전례가 없다며 허락하지 않고, 도주의 귀환만 문위하였다.

동래 부사의 임무 중 하나는 일본의 선박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황호는 1646년(인조 24) 6월 소속을 알 수 없는 왜선 한 척이 물마루에 나온다는 봉군(烽軍)들의 보고를 받고 장계로 올려 일본 선박의 왕래를 감독하기도 하였다. 과거 연안 부사 때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 주지 않고 창고에서 썩게 하였다는 죄목으로 8월에 파직당했다. 1648년(인조 26) 성균관 대사성이 되었다가 바로 사간원 대사간으로 옮겼으며, 1649년(효종 즉위년) 역모를 꾸민 김자점(金自點)과 관계가 있다는 참소를 당해 1650년 파직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 복관되어 대사성이 되었고, 사은사(謝恩使) 부사로 이시백(李時白)과 함께 청나라 연경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황호는 문재(文才)가 뛰어나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시문집인 『만랑집(漫浪集)』과 1636년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기록인 『동사록(東槎錄)』이 있다. 『동사록』에는 숙박한 지역의 날씨, 행로(行路)의 지형, 이정(里程), 일본인의 복색, 거동, 습속, 접대, 대화, 사신 일행의 처사, 방문지에 얽힌 내력 등이 일기 형식으로 상세하게 적혀 있다.

[상훈과 추모]

1660년(현종 1) 신원(伸寃)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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