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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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一夏 |
영어음역 | Whang Ilha |
이칭/별칭 | 자우(子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지현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자우(子羽). 증조 할아버지는 예천 군수 황입중(黃立中)이고, 할아버지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자 김천역 찰방을 지낸 황면(黃沔)이며, 아버지는 판관 황진구(黃震耈)이다. 어머니는 김계(金棨)의 딸이다. 부인은 이시형(李時馨)의 딸로, 이조 판서를 역임한 황흠(黃欽)의 재종제이다.
[활동 사항]
황일하(黃一夏)[1644~1726]는 도사(都事)로 재임 중이던 1696년(숙종 22)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세자시강원 필선, 사헌부 장령, 세자시강원 문학, 사간원 헌납을 역임하였다. 1703년(숙종 29) 인원 왕후 김씨(仁元王后金氏)를 숙종의 계비로 책봉하는 일 때문에 주청사(奏請使)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때 사신으로서 체통을 잃었다는 죄를 입었으나 같은 해 청으로부터 책봉 칙사가 왔으므로 그 공을 인정받아 통정대부로 품계가 올랐다.
승지를 거쳐 1705년(숙종 31) 동래 부사에 임명되었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황일하는 1705년 1월 동래 부사에 임명되어 2월 동래에 도착하였으나, 과거 사헌부의 관원일 때 불미스러운 일이 들추어져 파직되었다. 1706년 장관청을 지금의 자리[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510-1]로 이전하였다. 1713년(숙종 39) 광주 부윤(廣州府尹)에 임명되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교체되었으며 1722년(경종 2) 이후 도승지, 한성부 좌윤, 경기도 관찰사, 호조 참판, 의정부 우참찬·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1726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황일하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동래 향교[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235]에 부사 황일하 영세불망비(府使黃一夏永世不忘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