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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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澤遂 |
영어음역 | Yi Taeksu |
이칭/별칭 | 보춘(普春),분재(奮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보춘(普春), 호는 분재(奮齋). 경평군(慶平君) 이륵(李玏)의 5세손으로 증조 할아버지는 동원군(東原君) 이집(李潗)이고, 할아버지는 청릉군(靑陵君) 이모(李模)이며, 아버지는 이언형(李彦衡)이다. 어머니는 홍현보(洪鉉輔)의 딸이고, 부인은 민백상(閔百祥)의 딸이다. 외삼촌은 사도 세자(思悼世子)의 장인인 홍봉한(洪鳳漢)이다.
[활동 사항]
이택수(李澤遂)[1739~?]는 서울에서 태어나 1761년(영조 37) 정시 병과에 급제하고 세자시강원 설서, 사간원 헌납, 홍문관 부수찬과 수찬, 사헌부 지평과 장령, 동래 부사, 승정원 승지, 사간원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773년(영조 49) 영의정 김상복(金相福)의 추천으로 그해 8월 동래 부사로 부임하여 1774년 1월 초량 왜관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이 때문에 선정비에 ‘화관보간(和舘補幹)’이라고 적혀 있다. 누이의 남편이 그 지역 순찰사로 부임하자 상피(相避)[친족 등이 같은 지역에서 벼슬을 하는 것을 피함)로 8월에 퇴임하였다.
1777년(정조 1) 홍계능(洪啓能) 및 홍지해(洪趾海) 삼형제 등이 주도한 존현각 적변(尊賢閣賊變)[정조(正祖)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어머니가 임금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와 가까운 친척이어서 ‘사정을 알고도 아뢰지 않은 죄’만 적용되었다.
[학문과 저술]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있는 2권 1책의 필사본인 『분재집(奮齋集)』과 대둔사(大芚寺) 승려들의 비명을 모아 편집한 『대둔 보감(大芚寶鑑)』에 수록된 「유명조선국팔도선교십육종규정함월대사비명(有明朝鮮國八道禪敎十六宗糾正涵月大師碑銘)」[1762]이 있다.
[상훈과 추모]
1774년 3월 소통사 등이 세운 선정비인 이택수 만세불망비가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로 210번지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