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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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彛章 |
영어음역 | Yi Ijang |
이칭/별칭 | 군칙(君則),수남(水南),충정(忠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진상원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군칙(君則), 호는 수남(水南). 증조 할아버지는 이해창(李海昌)이고, 할아버지는 이만익(李晩益)이며, 아버지는 이필중(李必重)이다. 어머니는 윤반(尹攀)의 딸이고, 부인은 최상겸(崔尙謙)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이장(李彛章)[1708~1764]은 1729년(영조 5) 생원시에 급제하고, 1735년(영조 11)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9년(영조 15) 세자시강원 설서로 벼슬살이를 시작하여 호남 어사로 나갔다. 그 후 사헌부 지평, 회양 부사, 홍문관과 사간원의 요직을 거쳐 1748년(영조 24) 동지 겸 사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홍문관과 사간원의 요직을 거친 뒤 1749년(영조 25) 경기 어사, 1751년(영조 27) 북도 어사, 1752년 대사간에 이어 승지, 장단 부사로 나갔다. 이 무렵 동래 왜관의 왜인들이 조정에서 내리는 예단삼의 질이 좋지 않다며 돌려보내는 등 농간을 부렸다. 이에 조정에서 그 책임을 물어 1753년(영조 29) 3월 동래 부사 신위(申暐)를 남해현으로, 전임 동래 부사 조재민(趙載敏)을 해미현으로 귀양 보내고, 이이장을 동래 부사로 파견하였다.
동래에 부임한 이이장은 왜와의 관계를 잘 처리하여 그해 11월 경상 감사로 승진하였다. 1755년(영조 31) 대사간을 거쳐 승지로 있을 때 북쪽 변방에 문제가 생기자 참핵사, 관서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1759년(영조 38) 대사성을 거쳐 함경 감사로 임명되었는데, 이는 북쪽 변방의 방어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1761년(영조 40) 대사헌, 1762년 형조 참판에 이어 도승지로 있을 때 영조(英祖)가 사도 세자(思悼世子)를 휘령전(徽寧殿)으로 불러 뒤주에 가두어 죽이려 하자, 이이장은 “어찌 세자를 죽이려하느냐.”고 소리 지르며 막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대사헌, 형조 참판을 거쳐 1764년(영조 40) 다시 대사헌으로 재임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788년(정조 12)에 이조 판서에 추증되고, 충정(忠正)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