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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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蘇斗山 |
영어음역 | So Dusan |
이칭/별칭 | 망여(望如),월주(月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순순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망여(望如), 호는 월주(月洲).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소동명(蘇東鳴)이다.
[활동 사항]
소두산(蘇斗山)[1627~1693]은 1652년(효종 3) 진사가 되고, 1660년(현종 1)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성균관 전적을 거쳐 1663년(현종 4)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 직언을 잘하여 권신(權臣)들의 눈밖에 나 주로 외직을 돌아다녔다. 1672년(현종 13) 나주 목사일 때 흉년으로 굶주리는 백성을 잘 보살펴 상을 받았다. 1675년(숙종 1) 제주 목사, 1681년(숙종 7) 이후에는 강릉 부사, 의주 부윤,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를 지냈고 1683년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동래 부사 재임 시 소두산은 왜관에 사는 일본인들의 규율 준수와 밀무역 금지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계해약조(癸亥約條) 체결에 관여하였다. 또 겸대선을 복구해 달라는 쓰시마 번[對馬藩]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말 것을 조정에 청하기도 하였다. 초량 왜관의 왜인들이 춘분과 추분 그리고 백중에 두모포 왜관으로 성묘 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장계를 올려 허락을 받았다. 1684년 1월 동래 부사를 그만두고 공홍도 관찰사(公洪道觀察使) 및 공홍도 수군절도사를 거쳐 1688년(숙종 14)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이듬해 일어난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정권을 잡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가 울분에 못 이겨 병사하였다.
[학문과 저술]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며, 문집인 『월주집(月洲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 870번지 완주 공단 끝자락에 소두산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