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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067
한자 成晋善
영어음역 Seong Jinseon
이칭/별칭 즉행(則行),연강(烟江)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창녕
대표관직 동래 부사|경상도 관찰사
출생 시기/일시 1557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4년 -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7년 - 전라도 도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1년 12월연표보기 - 동래 부사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12년 12월연표보기 - 동래 부사 퇴임
활동 시기/일시 1615년 -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
부임|활동지 동래부 동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421-56지도보기
묘소|단소 성진선 묘 - 대전광역시 유성구 둔곡동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즉행(則行), 호는 연강(烟江). 아버지는 참의 성수익(成壽益)[1528~1598]이고, 아들은 성하연(成夏衍)[1585~?]이다.

[활동 사항]

성진선(成晋善)[1557~?]은 1594년(선조 27) 문과에 급제하였다. 1597년(선조 30) 전라도 도사로 있을 때 일 처리가 경망스럽고 형벌을 남용한다는 사간원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가 얼마 후 해주 판관으로 나갔다. 이후 홍문관 수찬, 사간원 정언, 홍문관 부교리, 경연 시독관 등을 역임하였다. 1611년(광해군 3)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성진선은 1611년 12월 동래 부사로 부임하여 이듬해 12월 퇴임하였다.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에 의하면 성진선은 1612년 중앙에 알리지 않고 쓰시마 도주[對馬島主]의 서계[書契][조선과 일본이 주고받은 공식 외교 문서]를 임의로 고쳐 주어 추고(推考)를 당하였다고 한다.

1613년(광해군 5) 아들 성하연이 인목 대비(仁穆大妃)[영창 대군(永昌大君)의 어머니]를 폐하자고 주장하여 곤란한 처지에 놓였으나 끝까지 논의에 참여하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 1615년(광해군 7) 경상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2년 뒤 일본에서 사신을 요청해 왔다는 동래부의 보고를 받아 서계로 중앙에 올린 바 있다. 이후 대사간, 홍문관 부제학, 승정원 우승지를 역임하였다.

[묘소]

성진선의 묘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둔곡동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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