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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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遂默 |
영어음역 | Seong Sumuk |
이칭/별칭 | 성집(聖執),효헌(孝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훈식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성집(聖執). 할아버지는 밀양 부사를 지낸 성덕구(成德求)이고 아버지는 성긍주(成肯柱)이며, 어머니는 이두원(李斗源)의 딸이다.
[활동 사항]
성수묵(成遂默)[1792~1850]은 1792년(정조 16) 서울에서 태어나 1825년(순조 25) 진사로서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29년(순조 29)까지 한림원 직각 등을 역임하고, 같은 해 전라우도 암행어사로 나갔다. 1832년(순조 32) 무안 현감, 1834년에는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7년(헌종 3) 3월 동래 부사가 되었고 이듬해 11월 그만두었다. 동래 부사일 때 쓰시마[對馬]에 보내는 외교 문서를 다루었다.
1839년(헌종 5) 성균관 대사성, 1840년 이조 참의, 1841년 도방대거 승지, 1843년 함경도 관찰사, 1846년 이조 참판·사헌부 대사헌을 거쳐 1847년(헌종 13) 형조 판서일 때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48년 좌참찬, 1849년(철종 즉위년) 한성부 판윤과 예조 판서를 지냈고, 1850년(철종 1) 3월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의 정사(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고, 외교관으로도 활동한 성수묵은 1850년 세상을 떠났다.
[묘소]
성수묵의 묘는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성수묵이 동래 부사에서 물러난 이듬해인 1839년(헌종 5) 동래부에 선정비가 세워졌다. 성수묵 영세불망비(成遂默永世不忘碑)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 17-7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