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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052
한자 東萊藥契
영어의미역 Dongnae Pharmacists’ Cooperatives
이칭/별칭 동래 약점
분야 역사/전통 시대,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동철

[정의]

조선 후기 동래 지역에서 인삼 등 약재의 안정적 확보와 조달을 위해 설립된 계(契).

[관련 기록]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659년(효종 10) 2월 8일조에 의하면, “각 시장과 각 마을에 사약계(私藥契)가 사기 쳐서 이익을 도모하는 자가 매우 많아 혜민서와 전의감에서 약을 파는 규칙이 마침내 폐지되었다. 이에 약 값이 크게 올라 그 폐해가 적지 않으니, 각 아문의 약방 외에 사약계는 일절 금한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17세기 중엽에 서울은 물론 각 지방에도 사약계가 널리 유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 후기 왜관을 통해 인삼 등 약재를 일본에 수출했던 동래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내용]

정부의 금지 조처에도 불구하고 사약계는 더 활발하게 약재 유통에 관여하였다. 특히 인삼 등 약재의 밀무역을 주도하고 있었다. 1771년(영조 47)에 발각된 한 인삼 밀무역 사건에 동래 약계(東萊藥契) 박태렴(朴泰廉)이 관련되어 있었다.

일본은 인삼 수입에 따른 은의 유출을 막기 위해, 8대 장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 1716~1745] 때 대대적인 조선 약재 조사를 실시하였다. 특히 1721(경종 1)~1722년(경종 2)에는 허 비장(裨將)과 이 첨지(僉知)라는 두 사람이 약 40종의 약재를 초량 왜관에 조달하였다. 일본 측 자료에 의하면, 이들은 당시 동래 약점(東萊藥店)에 관계하고 있었다. 약점의 실체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두 사람은 상인으로 동래부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약재 취급 업자인 약계(藥契)의 일원으로 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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