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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곶성 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987
한자 帝釋串城-
영어의미역 Site of Jeseokgotseong Fortress
이칭/별칭 제석곶,제석곶성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사하구 제석로 135[당리동 16]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나동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곽 터
소재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당리동 16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당리동 제석골에 있는 조선 전기 기우소(祈雨所)의 석축 터.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3 ‘동래현 고적조’와 『동래부지(東萊府誌)』 권18 ‘성곽 조’에 “승악산 아래 석성이 있는데 정덕 경오년(正德 庚午年)[1510년(중종 5)]에 왜변(倭變)[삼포왜란]으로 인하여 고절(孤節)함에 지키기 어려워 파수(罷戍)하였다.”라는 기사가 있다. 또한 『동래부지』에 “동래부 남쪽 40리 승악산에 기우소(祈雨所)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위치는 사하구 당리동에 있는 승학산과 산불량(山不良)의 사이에 있는 제석골로 보고 있다. 제석골이란 계곡의 명칭은 제석단을 쌓고 기우제를 올린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제석골에 사당을 짓고 여신을 모신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제석이란 불교 용어로 각지에 같은 이름이 많은데, 대개 기우제 단이 있으며 아치섬을 제석곶이라고 하여 기우제 단이 있는 것도 같은 사례로 보고 있다.

제석곶성이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적 조’에 나오는 것과 삼포왜란으로 인해 수(戍)[군사적 주요 거점에 설치된 일종의 감시 초소 역할을 하는 소규모의 성] 자리를 파하였다는 점, 제석사(帝釋寺) 주변에서 수습된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기우소 인근에 조선 전기 이전부터 관방 시설인 수가 있었다가 폐성(廢城)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

제석곶성 터부산광역시 사하구 당리동의 당리역에서 승학산으로 올라가는 제석골에 위치한다.

[현황]

현재 제석곶성 터에는 제석사가 있으며 ‘제석곡 신당(帝釋谷神堂)’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성벽으로 보이는 유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부산 지역에서 확인된 조선 시대의 관방유적은 대부분 읍성이나 산성, 수군진성 등인데, 제석곶성 터는 비록 성벽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유례가 드문 관방 시설인 수(戍)가 존재하였음을 알려 주는 유적이다. 제석사 부근에서는 고려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생선뼈와 같은 어골문(魚骨文) 기와가 수습되었으며, 누석단(壘石壇)이라는 돌로 쌓은 단도 있어 민속적으로도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당** 성벽이남아있습니다.일원파크맨션뒤쪽산에있어요 2017.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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