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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974
한자 鄭一千
영어음역 Jeong Ilcheon
이칭/별칭 일범(一凡)
분야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1가 1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서용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자|교수
성별
대표관직|경력 부산대학교 의과 대학 초대 학장
출생 시기/일시 1906년 6월 20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8년 - 경성의학전문학교 우등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4년 -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34년 9월 - 의학 박사 학위 취득
활동 시기/일시 1941년 -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교수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2년 - 마산동의원 개원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7년 - 조선해부학회 창설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부산대학교 의과 대학 초대 학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제4회 부산시 문화상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부산가톨릭의과대학 해부학 교실 주임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72년 - 『조직학』 저술
활동 시기/일시 1975년 - 『발생학 사전』 저술
활동 시기/일시 1976년 - 『도해 해부학 사전』 저술
활동 시기/일시 1980년 - 『면역학 사전』 저술
몰년 시기/일시 1993년 1월 21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2년 6월 - 일범 공원 조성, 정일천 흉상 건립
출생지 창원 - 경상남도 창원시
거주|이주지 부산 -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 1가 10-1지도보기
수학|강학지 중동학교 - 서울특별시
수학|강학지 경성의학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활동지 경성제국대학 - 서울특별시
활동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촌동 134
활동지 마산동의원 - 경상남도 마산시
활동지 부산대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산 30지도보기
활동지 부산가톨릭대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3동 9지도보기
기념 공원 범일정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 부산대학교 의학 전문 대학원

[정의]

부산대학교 의과 대학 학장을 지낸 해부학자이자 교육자.

[가계]

호는 일범(一汎). 아버지는 정인택(鄭仁澤)이고, 어머니는 박순개(朴順介)이며, 5남 1녀의 장남이다.

[활동사항]

정일천(鄭一千)[1906~1993]은 아홉 살까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 기독교 계통의 사립학교인 계광학교(啓光學校)로 옮겨 6년간 수학한 후 상경하여 중동학교(中東學校)[현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24년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에 입학하여 의학을 공부하였다. 가장 흥미를 느낀 과목은 해부학이었으나 4학년 때 조선총독부의원부산부립병원에서 임상 실습을 한 후 임상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1928년 3월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유일한 조선인으로서 부산부립병원 외과 의사가 되었다. 지도 교수가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해부학 교실로 옮기면서 조수로 불러들이자 정일천은 임상 의사의 꿈을 뒤로 미루고 경성제국대학 해부학 교실로 옮겨 본격적으로 해부학 연구를 시작하였다. 1934년 9월 「장관에 있어서의 소위 황색 세포에 관한 형태학적 연구」로 경성제국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아 정일천은 한국인 최초의 해부학자가 되었다.

박사 학위를 받기 직전인 1934년 3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에 임명되었다. 정일천은 조직학 등 자신의 전공 분야인 해부학 관련 과목을 주로 강의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1941년 갑자기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로 옮겨 해부학이 아닌 외과 분야를 연구하였다. 이는 병원을 개업하기 위한 준비였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외과에서 1년 동안 임상 경험을 쌓은 후 1942년 고향 창원에서 가까운 마산에 마산동의원을 개원하여 외과와 산부인과 진료를 하였다. 당시 마산 인근에서 박사 학위를 가진 의사는 정일천밖에 없었고, 경성제국대학과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까지 지낸 한국인 의학 박사가 진료한다는 소문이 돌아 지역에서 상당한 명성을 누렸다.

1945년 8월 광복 후 백인제(白麟濟)의 권유로 모교인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가 되어 학계로 돌아왔다. 1946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가 국립서울대학교로 통합되면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의 첫 주임 교수가 되었다. 1947년에는 나세진(羅世振) 등과 조선해부학회를 창설하여 초대 학회장을 지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피란길에 올라 다시 마산동의원에서 일하며 정착하려 하였다.

1955년 부산대학교 총장 윤인구(尹仁駒) 등이 찾아와 신설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의 학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하였다. 정일천은 고심 끝에 지역 사회의 의료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요청을 수락,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초대 학장 및 부산대학교 부속병원장에 취임하였다. 정일천은 갓 출발한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을 7년 동안 이끌면서 학교 발전과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다. 1962년 서울의 가톨릭대학 의과 대학으로 옮겨 해부학 교실 주임 교수로 활동하다가 정년 퇴임하였으며, 그 후에도 활동을 계속하여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1993년 1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1972년 『조직학』, 1975년 『발생학 사전』, 1976년 『도해 해부학 사전』, 1980년 『면역학 사전』 등을 발간하였다.

[상훈과 추모]

부산대학교 대학원장 및 총장 서리를 맡아 부산 지역의 의료 및 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62년 제4회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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