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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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玄玉 |
영어음역 | Gim Hyeonok |
이칭/별칭 | 불도저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나종만 |
[정의]
1962~1966년 제12대와 13대 부산 시장을 지낸 정치인.
[활동 사항]
김현옥(金玄玉)[1926~1997]은 1926년 10월 27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7년 육군사관학교를 제3기로 졸업한 뒤 남조선 국방 경비대에 입대하였고, 1953년 육군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54~1955년 육군수송감실 차감을 지낸 이후 1955~1957년 육군수송학교 교장, 1957~1960년 육군제1야전 사령부의 수송 참모 부장, 1960년 육군수송감실 차감을 역임하였다. 5·16 군사 정변 당시 김현옥은 육군제3항만 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군사 정변을 지지·협조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62년 준장으로 예편한 뒤 같은 해 4월 20일 변재갑(卞在甲)의 후임으로 제12대 부산 시장에 임명되었다.
김현옥은 취임 첫 해에 각종 행정 위원회를 만들고, 시민의 시정 참여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이동 시청을 운영하였다. 또한 공약 및 확인 행정 시행, 도로 개설 및 정비, 초등학교 학구제 실시, ‘시민의 노래’ 제정 등의 사업을 추진하였다. 1963년 1월 1일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초대 부산직할시장이 되었고, 이후 한 차례 연임하였다. 연임 시장을 할 때 김현옥은 생산 증대와 외화 획득, 개발과 도시 정비, 봉사와 복지 향상을 시정 목표로 삼고 부산이 우리나라 제2의 도시로 도약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1966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장에 발탁되었다. 이때 김현옥은 저돌적인 방식으로 도시 개발을 추진하여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었다.
1966년 건국대학교 정치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 디킨스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과 주의에 집착한 불도저식 개발 행정은 1970년 4월 8일 서대문에 새로 지은 와우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끝이 났다. 김현옥은 11명의 희생자를 낸 아파트 붕괴 사고의 책임을 지고 서울 시장에서 물러났으나 박정희(朴正熙)의 두터운 신임에 힘입어 1971년 내무부 장관으로 복귀, 1973년까지 재임하였다. 1973년 행정 비상임 위원, 1977년 한국유스호스텔협회 회장과 정립회관[소아마비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비리 행위자로 지목되어 곤욕을 치른 후 칩거해 있다가 1981년 5월 낙향하여 외척이 설립한 재단법인 동인학숙 산하 장안중학교[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좌천리 232] 교장에 취임하였다. 1995년 지방 선거 때 부산 시장에 출마하여 문정수, 노무현(盧武鉉) 등과 경쟁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듬해 장안제일고등학교[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좌천리] 교장이 되었고, 1997년 1월 9일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소성 훈장, 근정 훈장, 미국 훈장, 독일 훈장, 영국 훈장, 자랑스러운 건국인상 등을 수상하였다.
[학문과 저술]
수필집 『푸른 유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