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김정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952
한자 金廷鶴
영어음역 Gim Jeonghak
분야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산성로 872[장전동 산3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보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고학자|교수
성별
대표관직|경력 부산대학교 교수|부산직할시립박물관 관장
출생 시기/일시 1911년 10월 14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3년 -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54년 - 하버드대학교 유학
활동 시기/일시 1947년 -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9년 - 웅천 패총 조사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광주 가락리 주거지 발굴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한국고고학협회 창립, 부회장을 지냄
활동 시기/일시 1968년 - 영남대학교 박물관 초대 관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70년 - 부산대학교 사학과 교수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76년 - 한국고고학연구회 창립
활동 시기/일시 1978년 - 부산직할시립박물관 초대 관장에 임명, 한국고고학연구회 제2대 회장이 됨
활동 시기/일시 1978년 - 동국대학교 객원 교수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83년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객원 교수에 임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문화연구소장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2006년 4월 20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문천 - 함경남도 문천군
거주|이주지 서울 - 서울특별시
거주|이주지 부산 - 부산광역시지도보기
수학|강학지 경성제국대학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 56-1
활동지 고려대학교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5가 1
활동지 부산대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산 30지도보기
활동지 부산직할시립박물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지도보기
활동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50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대한민국 고고학 제1세대이자 고대사 연구자.

[가계]

호는 학산(鶴山). 부인은 송영희(宋玲姫)이고, 아들은 김문석(金文錫), 김문혁(金文赫)이다.

[활동 사항]

김정학(金廷鶴)[1911~2006]은 1911년 함경남도 문천에서 출생하였다. 1940~1943년 경성제국대학[현 국립서울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여 고대사와 고고학을 공부하였다. 1947년 고려대학교 교수가 되어 1967년까지 재직하였다. 1954~1956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 유학하여 구석기 연구의 대가인 모비우스(H. L Movius) 교수와 저명한 형질 인류학 교수인 하웰스(W. W Howells)를 사사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얻은 고고학과 인류학에 대한 지견은 김정학이 한국 고고학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김정학은 귀국 후, 고려대학교의 인류고고회를 지도하면서 한강 중류 및 하류 지역의 답사를 통해 이 일대에 산재한 신석기 시대 및 청동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다수 확인하였고, 명일리[현 서울특별시 강동구 명일동]와 가락리[현 서울특별시 송파구 가락동] 일대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를 발굴하였다. 1963년에는 「광주 가락리 주거지 발굴 보고」를 통해 이곳에서 출토된 민무늬 토기를 ‘가락식 토기’라고 명명하고, 이 가락식 토기가 일본 열도의 야요이[弥生] 시대 전기(前期)의 이타쓰케[板付]식 토기의 원류로 이해하였다.

1960년대 전반 한강 유역의 지표 및 발굴 조사를 통해 얻은 유물·유적을 토대로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토기와 청동기 시대 민무늬 토기 문화의 존속 기간 및 특징을 구명하고자 하였다. 김정학은 종래 신석기 시대의 토기를 빗살무늬 토기[즐문 토기]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였다. 핀란드에서 시베리아에 이르는 북방 유라시아 지역에서 발굴된 다양한 특징의 신석기 토기를 뭉뚱그려 캄케라믹(Kammkeramik)의 번역어인 ‘즐문 토기’라 명명하였으나 이는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토기 용어로는 어울리지 않다면서 기하문 토기(幾何文土器)로 명명할 것을 제창하였다. 그동안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토기는 북방 유라시아 토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김정학의 발굴 조사 및 연구 성과에 따르면 유라시아의 신석기 토기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빗살무늬 토기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김정학의 의견은 제대로 된 판단이었다.

김정학은 1959년부터 1963년까지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속으로 진해 웅천 조개더미를 조사하여 웅천 문화기를 설정하고, 그 시기를 기원전 2세기~1세기로 잡았다. 웅천 문화기의 대표 유물로 회색 연질 토기[와질 토기], 적갈색을 띤 연질의 둥근 바닥 넓은 입 항아리[원저 광구호], 사슴뿔 모양 손잡이가 달린 손칼[녹각병 도자] 등을 들었다. 하지만 웅천 문화기의 유물은 낙동강 하류인 김해, 부산 지역의 조개더미에서도 확인되었고, 유물의 조합 양상 등으로 볼 때 시기가 기원전으로 올라갈 수 없으며, 3~4세기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김정학은 1968년 영남대학교 초대 박물관장을 지냈으며, 1970년 부산대학교 교수로 임명되고 부산대학교 박물관장을 겸하였다. 부산대학교 박물관장일 때 부산 오륜대 고분 조사[1971], 화명동 고분군 조사[1972]), 부산 금곡동 율리 조개무지와 암음 유적[그늘집 터] 조사[1972], 경주 미추왕릉 지구 고분군 조사[1973~1974], 부산 학소대 고분군[부산 복천동 고분군의 일부] 조사[1974], 김해 예안리 고분군 조사[1976] 등 영남 남동부 지역 가야와 신라 고분군에 대한 발굴 조사를 주도하였다. 1977년 부산대학교에서 정년 퇴임 후 부산직할시립박물관 초대 관장이 되어 박물관 개관을 지휘하고, 가야 문화에서 부산의 위상을 강조하였다. 1978년 8월 5일 부산직할시립박물관장을 그만둔 뒤에도 우리나라의 선사 시대와 고대사, 고고학 연구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다. 1990년 『한국 상고사 연구』를 발간하였다. 2006년 4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김정학은 우리나라의 고고학 연구 제1세대로서, 고고학과 고대사의 접목을 통한 과학적인 역사 연구를 주창하였다.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이후 선사 시대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야와 고대 일본의 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가야 고분군의 발굴 조사 성과를 토대로 『任那と日本』[『임나와 일본』]을 썼다. 이 책을 통해 김정학은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역사 인식과 서술을 강조하고, 일본의 야요이 문화 및 고분 문화 성립에 우리나라 남부 지역의 문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1972년 김정학의 주도로 『韓國の考古學』[『한국의 고고학』]이라는 한국 고고학 개설서가 일본에서 처음 간행하였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발굴 조사 및 연구 성과를 모은 책으로, 이후 우리나라 고고학 연구의 지침서 역할을 하였다. 1990년 발간된 『한국 상고사 연구』는 김정학의 고고학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