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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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絶影島神祠 |
영어의미역 | Jeollyeong Island Shrin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윤용출 |
[정의]
조선 전기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던 산천제의 신당.
[제정 경위 및 목적]
1429년(세종 11) 11월 국가 사전(祀典)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기우(祈雨)를 목적으로 한 산천제의 장소로 동평현(東平縣) 남쪽에 위치한 절영도(絶影島)에 제장(祭場)을 추가하여 설치하였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 동래현, 사묘(祠廟)에 “절영도 신사(絶影島神祠)·모등변 신사(毛等邊神祠) 모두 동평현 남쪽 1리에 있다. 고지도 신사(古智島神祠) 현에서 남쪽으로 23리에 있다. 돌로 단을 만들었으며, 옛날에는 비가 오기를 빌어 징험이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절영도·모등변도(毛等邊島)는 모두 동평현 남쪽에 있으며, 소재관(所在官)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한다”라고 되어 있다.
[내용]
산천제는 악(嶽)·독(瀆)·명산(名山)·대천(大川) 등에 지내는 제사를 뜻한다. 제사 형식은 시대마다 달랐다. 고려 시대에는 산천을 규제하기 위하여 영험이 있는 곳에 봉작제(封爵制)를 시행하였고, 작위를 받은 산천은 사전에 올려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봉작제가 폐지되어 산천은 본래의 명칭으로 불리게 됨으로써 의인적 요소가 소멸되었고, 또한 단순히 악(岳)·해·독과 명산·대천 등으로만 구분하여 사전에 등재하였다. 산천에 대한 제사는 소재 지방관이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고, 국가에서는 악·독·산·천의 제품(祭品)의 예에 따라 국고의 미곡을 지급하였다.
게다가 1429년 11월에는 이전에 혁파된 기암(奇巖)·용혈(龍穴)과 사사(寺社) 등 영험한 곳을 찾아 사전에 올림으로써 산천제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산천제는 전국 각지에 분포하였고, 경상도에는 진주(晉州)의 성황(城堭), 김해의 가덕도(加德島) 등이 새로 지정되었고, 동래의 고지도, 동래 동평의 절영도·모등변도도 이때 추가된 곳이다. 절영도 신사, 모등변 신사는 기존의 산천신과 달리 섬의 신을 모시는 곳이다. 이 가운데 절영도 신사는 동래 지역에 설치된 제향처이고, 기우에 영험이 있었다.
[변천]
절영도 신사는 세종 대에 기우처로 지정되어 산천제의 대상 지역으로 사전에 등재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 더 이상 관련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보아 혁파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절영도 신사를 통해 조선 전기 사전의 성립 및 변천을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