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신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850
한자 辛沃
영어음역 Sin Ok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가동 마을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제장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영월
대표관직 무장
활동 시기/일시 1591년 - 무장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592년 4월 14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파주 - 경기도 파주시
부임|활동지 부산진 - 부산광역시
묘소|단소 신옥 묘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내리 산 26지도보기
묘소|단소 다산단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방곡리 산 23

[정의]

임진왜란의 첫 전투인 부산진성 전투에서 공을 세운 무장.

[활동 사항]

신옥(辛沃)[?~1592]은 영월 신씨(寧越辛氏) 판서공파 22세손으로 기장 입향조이다. 경기도 지역에서 무관 생활을 하다가 1591년(선조 24) 부산진 첨절제사 정발(鄭撥) 밑에 무장으로 들어간 것을 계기로 기장에 입향(入鄕)하였다. 어릴 때 효자로 이름나 『삼강록(三綱錄)』에 등재되었다.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오후 5시 무렵 왜군 제1번 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1만 87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부산포 앞바다에 도착하였고, 이튿날 새벽에 임진왜란의 첫 싸움인 부산진성 전투가 벌어졌다. 이 싸움에서 부산진 첨사 정발과 1,000여 명의 장졸(將卒)이 전사하고 성은 함락되었다. 신옥은 휘하 병사들과 항전하다가 왜군의 포로가 되었다. 왜장이 “이제 항복하라”고 하자 신옥은 “내 목은 칠 수 있으나 내 무릎은 칠 수 없을 것이다”라며 항복을 거부하다가 순절하였다.

[묘소]

신옥의 묘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내리 산 26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전란이 끝난 후 통정대부(通政大夫)와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추증되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방곡리에 있는 다산단(茶山壇)에 월천(月泉) 신오(辛澳)와 함께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