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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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春壽 |
영어음역 | O Chunsu |
이칭/별칭 | 죽강(竹崗),치범(致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포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영 |
[정의]
임진왜란 때 부산 출신으로 기장읍성 전투에 참가한 의병장.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죽강(竹崗), 호는 치범(致範). 아버지는 어모장군 오사원(吳仕遠)이다. 시조는 판관공파로서 필경공(弼卿公)이다. 사촌형은 의병장인 오홍(吳鴻)이다.
[활동 사항]
오춘수(吳春壽)[1573~1595]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포동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동래읍성이 함락되자 사촌형 오홍과 같이 의병을 모집하였는데 사방에서 모여든 젊은이가 300명이 넘었다. 이들을 훈련시켜 왜군에 함락된 기장읍성을 수복하기 위한 작전을 폈다. 오홍과 함께 휘하의 의병 300명을 독려하여 4월 20일경 기장현의 관문인 기장읍 서부리 용소 계곡에 매복하여 적병을 탐지하고 그날 밤 의병들과 동민들에게 한 사람이 여러 개씩 횃불을 들게 하여 동서부와 대라리를 점령하고 있던 왜군을 급습하였다.
왜병들은 위장 전술에 속아 겁을 먹고 제대로 도망도 못가고 죽은 자가 470명이나 되었다. 또 두모포에 김일덕(金一德) 휘하의 의병들이 왜군에 포위되자 인근의 의병대와 합세하여 적을 토벌하고 이들을 구출하였다. 그리고 양산 조평 전투에서는 장방 골짜기로 유인하여 100여 명을 수장하고, 달아나는 왜적 700여 명을 추격하여 완전히 소탕하였다. 이렇듯 많은 전투를 치르며 큰 전공을 세웠으나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무렵인 1595년(선조 28) 3월 13일 서생포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737년(영조 13) 사재감(司宰監) 첨정(僉正)에 추증되었다. 오홍과 함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에 있는 구산단·의용당에 같이 모셔졌다. 임진란 동래 24별전공신으로서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