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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일성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798
한자 東萊一誠館
영어의미역 Ilseonggwan in Dongnae
이칭/별칭 일성관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1[복천동 462-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건물|집회소
양식 벽돌 2층 건물
건립 시기/일시 1923년연표보기 - 동래청년회의 회관으로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997년연표보기 - 도로 확장 공사로 철거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1년 12월 10일연표보기 - 동래 사회단체 연합 회관으로 신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4년 - 동래 사회단체 연합 회관에서 동래 일성관으로 개칭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8년 - 시립 도서관의 동래 분관으로 이용
현 소재지 복산동 주민센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62-2지도보기
원소재지 동래 일성관 -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복천동 462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있던 일제 강점기 항일 운동 단체의 집회소.

[위치]

동래 일성관(東萊一誠館) 건물은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복천동 462번지, 현 주소로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462-2번지에 위치하였다. 동래 일성관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복산동 주민센터가 들어서 있다.

[변천]

동래 일성관 건물은 1923년 동래청년회(東萊靑年會)의 회관으로 건립되었다. 당시 동래기영회[한말 동래부의 퇴임관리들이 조직한 일종의 계(契)로서 동래 지역 애국 계몽운동 주도]는 회관 설립을 위하여 동래청년회에 건물 1채와 밭 462.81㎡[140평]를 기부하였다. 동래 청년 회관은 일제 강점기에 동래 지역의 대표적인 항일 운동 단체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동래청년회뿐 아니라 신간회 동래지회(新幹會東萊支會)·근우회 동래지회(槿友會東萊支會)·청년동맹·동래노동조합·소년동맹 등 여러 단체들의 사무실이 들어오면서 동래 청년 회관은 동래 지역 항일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많은 단체들의 입주로 장소가 비좁게 되자 1929년에 각 단체 대표들이 모여 동래 사회단체 연합 회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각지에서 기금을 모아 1931년 12월 10일에 동래 사회단체 연합 회관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애초 기공식은 1930년 3월 1일로 예정되었으나 일제의 방해로 기공식 일자를 연기하여야 하였고, 또 자금 부족으로 인해 행상대를 꾸려 각지로 기금 모금을 다니는 등 우여곡절 끝에 회관을 완공할 수 있었다.

이후 1934년에 동래노동조합이 해체되면서 회관의 관리권이 동래기영회로 넘어가고 명칭도 동래 일성관으로 바뀌었으며, 건물의 성격도 일반의 집회 장소로 확장되었다. 이에 동래 일성관을 중심으로 노동·농민·학생·청년 운동 등 사회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동시에 동래 일성관은 일본 경찰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었다. 동래 일성관 건물은 광복 이후 1968년에 부산시립도서관의 동래 분관으로 사용되다가 1997년 도로 확장 공사로 철거되었다.

[형태]

벽돌 2층 건물이었지만, 현재는 없어지고 남아 있지 않다.

[현황]

동래 일성관 건물은 1997년 도로 확장 공사로 없어지고, 현재는 그 자리에 복산동 주민센터가 들어서 있다. 복산동 주민센터 앞에 일성관 표지석이 있어 이곳이 동래 일성관 자리임을 알려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동래 일성관 건물은 동래 지역 사회 운동 단체가 입주하여 활동하던 항일 운동의 거점이자 현장이었다. 따라서 일제 시기 항일 의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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