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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644
한자 龍湖洞堂山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Ryongho-dong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동명로 126-5[용호1동 396-2]
집필자 황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9월 9일 오전 10시
신당/신체 제당|신석|위패
의례 장소 제당 -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1동 396-2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1동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용호동 당산제는 음력 9월 9일[중양절] 오전 10시 무렵에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1동 396-2번지에 있는 제당에서 1년에 한 번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용호동 당산 신앙의 특이한 점은 당산 신의 신체로 한지로 만든 고깔을 얹은 세 개의 신석(神石)을 제당에 봉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원 및 변천]

용호동 당산제의 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신석을 당산 신의 신체로 모셔 제의를 베풀게 된 연원에 대한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 용호동에 십여 가구의 집이 거주하고 있을 때, 금령 김씨의 집도 있었는데, 이 집안에는 힘이 센 삼 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집안이 부유하여 과객들이 많이 찾아오자 시도 때도 없이 과객 대접하기에 지친 주부가 어느 날 자기 집을 찾은 도사에게 과객의 수를 줄일 수 있는 비방을 묻자, 도사가 장산봉에 대마도를 향해 솟아 있는 바위를 깨뜨리면 된다고 일러 주었다.

이 말을 들은 주부는 아들 삼 형제를 시켜 도사의 말대로 장산봉의 그 바위를 깨뜨리지 않고 밀어붙이자 바위가 굴러 현재 당집이 있는 개울에 처박히면서 산산이 깨어졌고, 그 이튿날 아침에 가 보니, 부서진 바위에 피가 흥건히 배어 있었다. 동네에서는 이 바위들은 보통 바위가 아니니 당을 짓고 바위를 모셔야 된다고 하자, 당시 자식을 얻지 못해 애를 태우던 정명수라는 분이 이 말을 듣고 사재를 털어 당을 짓고 바위를 모셨다. 그 뒤 지성으로 기도한 결과 자식을 얻을 수 있었고, 이로 인하여 이 당이 제석골의 제당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또한 장산봉의 바위를 밀어붙여 깨뜨린 금령 김씨 집안은 그 뒤 과객도 찾아오지 않게 되고 재물도 점점 바닥나 망하였다 전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용호동의 제당은 세 곳에 있다. 장산봉 아래의 약수터 바로 위 제석골에 산신당과 본 제당이 있고, 용호1동 주민센터 근처에 토지 지신당[일명 구월당]이 있다. 산신당에는 ‘장자산 산신지위(長子山 山神之位)’라 쓴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본 제당에는 ‘삼존불신지위(三尊佛神之位)’라 쓴 위패와 자연석에 한지 고깔을 씌운 신석 세 개가 깔방석 위에 모셔져 있다. 토지 지신당에는 ‘용호동 수호토지지신신위(龍湖洞守護土地之神神位)’라 쓴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절차]

당산제를 모시는 절차는 산신당제→ 본 당산제→ 토지 지신제 순이다. 당산제에 올리는 제물의 종류는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대동소이하나 산신당과 토지 지신당에는 돼지머리를 진설하며, 본 제당에는 고기류를 올리지 않는다. 제물을 진설하는 방식과 제의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이 유교식 엄숙형이다.

[현황]

원래 용호동에서는 매해 음력 1월 2일과 9월 9일 두 차례의 용호동 당산제를 모셨으나, 근자에는 9월 9일에만 제의를 지내고 있다. 용호동 당산제에 소요되는 경비는 남구청의 지원금과 각 주민들의 찬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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