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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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統一新羅時代-城郭-關防 |
영어의미역 | Castles and Border Defense in the Unified Silla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나동욱 |
[정의]
통일 신라 시대 부산 지역에 있었던 방어 시설과 행정 체제.
[개설]
통일 신라 시대 부산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단지 인물과 설화로 전하는 몇 가지 이야기를 통해 당시 부산의 위상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5세기 후반부터 왜(倭)가 신라의 변경인 부산 지역으로 침입하자 기장에 임해진(臨海鎭), 낙동강 하구에 장봉진(長峯鎭)을 설치하였다는 것과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순행하였다는 태종대(太宗臺)는 왜의 침입에 대한 신라의 염려와 대비를 엿볼 수 있다.
[성곽과 유적]
통일 신라 시대에도 여전히 왜구의 침입이 있어, 통일 신라 정부는 678년(문무왕 18)에 금정산에 해양 방어를 위한 호국 사찰을 건립하였고, 방어를 위한 성곽도 쌓게 되었다. 예를 들면 기장 산성의 경우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는 포곡식 산성(包谷式山城)으로, 성벽은 북쪽이 가장 높고 서쪽과 동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포곡식의 경우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식수를 확보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으며, 성에서 바라보는 방향이 동쪽의 바다인 점은 왜의 침략에 대비하는 입지를 갖추고 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빈번한 왜의 침략으로 인하여 백성을 보호하고 안정적인 행정 체제의 유지를 위해 동래군을 중심으로 군현 단위에도 성곽을 축조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것이다. 현재 확인된 성곽 유적은 동래군의 경우 배산 아래에 있는 동래 고읍성 터, 동평현의 경우는 부산진구에 있는 당감동 성터, 기장현의 경우는 교리에 있는 기장 고읍성 등 고려 및 조선 시대의 기록에서 보이는 고읍성(古邑城) 등이 있다. 이를 통해 통일 신라 시대에 지방 행정과 왜의 침입에 대비한 군사적 성격을 겸한 읍성(邑城) 축조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