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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동 곡리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575
한자 蓮山洞谷里堂山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Yeonsan-dong Gongnimaeul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부산광역시 연제구 중앙대로1120번길 13-2[연산4동 677-9]
집필자 김국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3월 중 택일
신당/신체 제당|위패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1년연표보기 - 제당 건립
의례 장소 제당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4동 677-9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4동 곡리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연산동 곡리 당산제는 음력 3월 중에 택일하여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4동 677-9번지에 있는 제당에서 2, 3년마다 한 번 마을의 안과태평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연산동배산성지(盃山城址)연산동 고분군(蓮山洞古墳群)의 유적을 통해 볼 때, 삼국 시대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당산제의 역사도 마을 형성의 역사와 때를 같이 하여 그 연원이 오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의 제당은 1971년 건립한 것이다.

연산동 곡리 당산의 당산 나무와 관련된 전설을 통해 곡리 마을 주민들의 당산제에 대한 신앙의 깊이를 알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970년대 어느 해인가 곽씨 성을 가진 부인의 남편이 제주가 되어 당산제를 지냈는데, 무단히 허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약을 써 보아도 낫지 않고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해도 차도가 없어 고생하던 중, 하루는 남편이 자고 일어나 부인에게 당산 나무에 못이 박혀 있을 것이니 가서 장도리로 빼라고 했다.

부인이 가 보니 당산 나무에 큰 못 6개가 박혀 있어 그 못을 죄다 빼고 돌아오니 남편의 허리가 곧바로 나았다고 한다. 또 어느 해에는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이 당산 나무에 못질하여 현판을 달았다. 며칠 뒤 최씨는 배산에 가서 땔감을 해 오다가 논 물고 옆에 쓰러져 죽었는데, 시체가 까맣게 타 있었다고 한다. 또 한 해는 어느 집에서 제비 내는 것을 거절했다가 그해를 못 넘겨 두 아들을 잃었다고도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당은 대지 면적 40㎡[12평]에 건물 면적 2.3㎡[0.7평]로, 동향을 하고 있다. 기와 맞배지붕에 블록으로 벽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한 구조물이며, 문은 여닫이 외짝 알루미늄 새시 문이다. 제단은 직사각형 나무 제단이고, 신체는 위패로 ‘본주당산신위(本主堂山神位)’라는 지방이 붙어 있으며, 제단 위에 얹혀 있다. 1972년 조사 때에는 지방에 오른쪽부터 세로로 ‘강씨 골매기, 변씨 골매기, 이씨 골매기, 신씨 골매기’ 등이 나란히 쓰여 있었는데, 이것이 언제 바뀌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제당 왼쪽 뒤에는 수령이 50여 년 된 팽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절차]

연산동 곡리 당산제를 주관하는 제주는 정초에 율곡회[8·15 해방 이전부터 곡리에 거주한 자로 구성된 계 모임]에서 회의를 개최하여 한 명을 선정한다. 제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은 과거에는 배우자가 살아 있고 첫아들을 낳은 정결한 자이어야 했으나, 현재는 연로하고 가정사에 별 문제가 없는 사람으로 하고 있다. 제주는 제의 일주일 전부터 끝나는 날까지 금기를 지켜야 한다.

제수의 준비와 진설은 일반 가정집의 기제사와 같아, 떡·과일·술·돼지머리 등으로 한다. 제의는 2, 3년마다 행하는데, 예전에는 음력 1월 14일 자정 무렵에 지냈다. 그러나 율곡회 계원들이 고령화되면서 이것이 무리하게 되자 음력 3월로 옮겼다. 정확한 당산제 날짜는 정초에 율곡회에서 정한다. 제의 절차도 제당 밖에서 산신제를 지낸 후, 제당에서 당산 할매제[골매기 할매제]를 지내고, 이어서 지도장군제[거릿대장군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당산제만 지내고 있다.

[축문]

현재 연산동 곡리 당산제에서 사용하는 당산제 축문(堂山祭祝文)은 다음과 같다. 몇몇 한자가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나, 그것대로 자연스런 변화로 보고 그대로 명기한다. “유세차 간지기축년삼월이일 율곡회원일동 감소고우 현본주곡리고목당산 세서천역 추원감시 호천강극 근이청작서수 공신모헌 상향(維歲次 干支己丑年三月二日 栗谷會員一同 敢昭告于 顯本主谷里古木堂山 歲序遷易 追遠感時 昊天岡極 謹以淸酌庶羞 恭伸莫獻 尙饗).”

[부대 행사]

참석 인원은 20명 정도이며, 연산동 곡리 당산제를 마치면 그 자리에서 음복한다. 이전에는 제의 뒤에 음복을 하면 적어도 보름 이상 금기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을의 노인들만 음복했으나, 지금은 그런 금기 의식은 많이 옅어졌다.

[현황]

연산동 곡리 당산제는 제의 주도층의 고령화로 제의 날짜가 변경되고 절차가 간소화되는 변화를 겪었지만, 현재도 율곡회의 주관 하에 전승되고 있다. 제의 경비는 율곡회원들의 회비에서 지출하며, 현재 대략 100만 원 정도의 경비가 지출된다. 제주에 대한 보수는 없다.

[참고문헌]
  • 『연제구지』(부산광역시 연제구청, 2005)
  • 『부산의 당제』(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 인터뷰(연제구 연산동 곡리 당산제 운영 위원장 정덕자, 64세, 201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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