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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505
한자 豪族
영어의미역 Powerful Families in the Late Unified Silla Kingdom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전기웅

[정의]

통일 신라 시대 말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지방 세력.

[개설]

호족(豪族)은 통일 신라 말기에 지방 사회에서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일정한 지역에 대해 행정·경제·군사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던 독자적인 지방 세력을 말한다. 당시 동래 지역에 있었던 호족 세력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다만 김해의 일부가 현재 부산의 행정권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이를 지역적으로 확대하여 본다면 주목되는 인물은 소충자(蘇忠子)·소율희(蘇律熙) 형제이다.

[호족 세력의 변천]

본래 김해 지역에는 신라 5소경의 하나인 금관경(金官京)이 설치되어 있었다. 신라 말에 이르면 소경은 폐지되고 주와 부로 개편되었다. 이때 김해는 금주(金州) 혹은 김해부로 개편되어 지김해부 진례성제군사 명의장군(知金海府進禮城諸軍事明義將軍)인 김인광(金仁匡)이 통치하고 있었으나, 그 후 908년경 진례성을 중심으로 성장한 소충자·소율희 형제가 새로운 세력으로 대두하였다. 김인광은 신라 왕족 출신으로 보이지만 소충자 일가는 지방에서 대두한 호족으로 추정되고 있다. 911년(효공왕 11)에는 소충자를 이어 소율희가 진례성제군사로 김해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다. 소율희는 김율희라는 이름으로도 나타나고 있어서 김씨로 성을 바꾸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김해 지역은 남해안의 해상 활동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낭공(郎空)·진철(眞徹)·진공(眞空)·충공(忠恭) 등 당(唐)에서 귀국하는 선종의 승려들을 맞아들이는 창구로서 선종의 요람이 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봉림산문을 개창한 진경 대사(眞鏡大師)는 김해 지역의 호족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또한 중국과 신라의 연락 업무를 담당하였던 이언모(李彦謨)는 김해 지역의 인물이었다. 이는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김해의 중요성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김해의 소율희는 인근 강주[진주] 지역의 왕봉규(王逢規) 세력과 함께 신라의 중국 교류 창구의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920년대에 이르면 이 지역을 둘러싸고 진출한 고려와 견훤(甄萱)의 신라 각축전이 치열해지면서 마침내 몰락하고 말았다. 강주의 왕봉규, 김해의 소율희가 모두 몰락하면서 남해안의 해상권은 견훤에게 넘어가고 부산 앞바다의 영도에 이르기까지 후백제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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