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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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國淸寺靑銅- |
영어의미역 | Busan Gukcheongsa Bronze Drum |
이칭/별칭 | 국청사 소장 강희 5년명 금고(國淸寺所藏康熙五年銘金鼓)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현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금고.
[개설]
금고(金鼓)는 청동으로 만든 북으로 반자(飯子, 半子, 盤子) 또는 금구(禁口, 金口)라고도 부른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불교 의식 법구의 일종으로, 대중을 부르거나 시간 및 급한 일 등을 알릴 때 사용하였다. 부산 국청사 청동북[釜山國淸寺靑銅金鼓]은 2008년 9월 11일에 국청사 소장 강희 5년명 금고(國淸寺所藏康熙五年銘金鼓)라는 명칭으로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12월 23일 부산 국청사 청동북이란 명칭으로 보물 제1733호로 재지정되면서 유형문화재에서 해지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범어사 성보박물관에서 위탁 보관 중이며, 일부 산화된 것 외에는 파손된 곳이 없어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형태]
부산 국청사 청동북의 크기는 지름이 65.3㎝, 두께가 14.8㎝로 비교적 큰 편이다. 금고 뒷면은 넓게 뚫려 있어 징과 유사한 모습이며, 측면의 세 곳에 고리를 달아 걸 수 있게 하였다. 앞면에는 세 줄의 융기 동심원문(隆起同心圓紋)을 두르고 그 내부에 다시 한 번 더 융기 동심원문을 배치하였다. 융기 동심원문을 통해 생긴 구획 중 가장 바깥에는 간략화된 연당초문(蓮唐草紋)을 시문하였고, 중간에는 5개의 원권(圓圈)을 두고 안에 ‘범(梵)’ 자를 두었다. 가장 안쪽의 공간인 당좌(撞座)[금고를 치는 자리]에는 어떠한 문양도 없다. 일반적으로는 당좌에 연판과 연밥 등의 문양이 시문되기도 한다.
뒷면의 가장자리에는 시계 방향을 이루며 주조처와 금고의 무게, 그리고 조성 연대의 명문이 써 있고, 그 내부에는 시주질(施主秩)[시주자 명단]과 화주질(化主秩)이 양각으로 압출되었다. 시주질과 화주질 아래쪽으로는 같은 내용의 명문을 묵서(墨書)로 적고 있다. 측면에도 사내질(寺內秩)과 시주질의 명문을 점각(點刻)하였다.
[특징]
부산 국청사 청동북은 조선 시대 금고 가운데 규모 면에서 큰 편에 속하며, 앞면에서 문양을 확인할 수 있는 금고 중 하나이다. 뒷면에는 ‘경상도 경주부 남 연화산 장천사 금기 중 백 근 강희 오년 병오 삼 월일 주성 시주질 박충민 이막남 대장 태응 신열 영득 화주질 계호 설은 설암 설심(慶尙道慶州府南蓮花山障川寺禁氣重百斤 康熙伍年丙午三月日鑄成施主秩朴忠民李莫男大匠太應慎悅永得化主秩戒湖雪訔雪岩雪心)’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또한 묵서에는 ‘…강희 오년 병오 삼 월 삼 일…(…康熙伍年丙午三月三日…)’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제작 시기가 3월 3일임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부산 국청사 청동북은 명문을 통해 경상북도 경주 남쪽의 연화산에 위치한 장천사(障川寺)에서 만들었으며, 무게는 약 60㎏[100근], 제작 시기는 1666년(현종 7) 3월 3일임을 알 수 있다. 시주질과 화주질, 사내질 등의 명단이 있지만, 특히 ‘대장(大匠)’ 즉 금고를 만든 사람이 태응, 신열, 영득으로 세 사람이 참여하였음이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부산 국청사 청동북은 1666년이라는 조성 연대가 명확히 확인되는데, 현재 부산 지역 금고 중 가장 이른 사례를 보이는 중요한 자료이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동치 원년명 범어사 금고(同治元年銘梵魚寺金鼓)[1862년]와 선암사 금고(仙巖寺金鼓)와 비교하면 문양이 새겨져 있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의 선행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어 당시 금고 양식 변천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