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4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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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剛般若波羅密經 |
영어의미역 | Vajracchedika Prajnaparamita Sutra |
이칭/별칭 | 『금강경』,『금강반야경』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경시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에 보관된 범어사 금강반야바라밀경 판본.
[개설]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줄여서 『금강경(金剛經)』또는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으로 부르는데 우리나라 조계종의 근본 경전으로, 『반야심경(般若心經)』 다음으로 널리 읽히는 불교 경전이다. 특히 선종에서도 주목받는 경전 중 하나로 5조 홍인(弘忍) 이래로 6조 혜능(慧能)이 중요시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지눌(知訥)의 권장에 의해 널리 유포되었다.
특이한 점은 공(空) 사상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경전의 문구 속에는 공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32분 단락을 나누어 제목을 붙이고 철저한 공 사상에 입각한 윤리적 실천으로 집착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면 “사물에 집착 없이 보시를 하라”든가 “구도자, 훌륭한 사람들은 발자취를 남기려고 하는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보시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든가 “구도자가 만약 사람을 인도했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진실한 구도자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 등이다. 『금강경』은 집착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자연스레 선의 길과 합치되어 가는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다.
[저자]
『금강반야바라밀경』의 한역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의 번역 외에 보리유지(普提流支), 현장(玄裝), 의정(義淨)의 번역이 있는데 이 판본은 국역자를 알 수 없다.
[편찬/간행 경위]
판본 조사에 의하면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우리나라에서 50여 차례 간행되었는데, 범어사에는 6종의 판본이 보관되어 있다. 그중 1415년(태종 15) 간본은 조선 시대에 간행된 『금강반야바라밀경』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본다. 이와는 다른 판본으로 1632년(인조 10) 간 경기도 삭령(朔寧) 용복사(龍腹寺) 본이 있고, 1679년(숙종 5) 간 울산 운흥사(雲興寺) 본과 1681년 간 운흥사 본이 있고, 1701년 간 문경 봉암사(鳳巖寺) 본이 있다.
이 중 1679년 간 운흥사 본에 쓰인 김유(金紐)[1420~?]의 서문은 1487년(성종 18)에 1차 목판본으로 간행했던 사정을 전하고 있다. 승려 상중(尙中)의 발원으로 이루어진 이 간행 사업은 당시 원각사(圓覺寺)에서 간행되었는데, 이 때 간행된 판본을 저본으로 뒤에 다시 운흥사에서 1679년과 1681년 두 차례에 걸쳐 간행하였다. 1632년의 용복사 본도 같은 판본의 복각본으로 본다. 1701년 봉암사 본은 화주 취(翠)의 주관에 의해 이것을 다시 저본으로 복각한 것이다. 범어사 소장본 범어사 금강반야바라밀경은 2007년 9월 7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서지]
사주 단변(四周單邊)[네 면에 한 줄의 선이 있는 형태]에, 반곽(半郭)[한 곽의 반에 글씨가 쓰여 있음]으로, 크기는 19.2×14.5㎝이며, 계선(界線)이 있다. 행자는 12행 21자이며, 상하향어미(上下向魚尾)이다.
[구성/내용]
철저한 공 사상에 입각하여 ‘공(空)’과 ‘혜(慧)’를 근본 사상으로 삼고 일체법무아(一切法無我)의 이치를 요점으로 무집착(無執着)의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나의 자아와 타인의 자아라는 대립 감정을 없애야 선에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범어사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요진(姚秦)의 구마라집이 402년에 번역한 경전으로, 선종을 완성시킨 6조 혜능에 의해 애송된 대승 경전이다. 현재까지도 불교계에서 가장 많이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공 사상을 가르치는 대승 경전이다. 숭유억불의 기치를 내걸었던 조선 시대에 사경을 통한 신앙 행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