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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시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460
한자 圃隱詩藁
영어음역 Poeun-Sigo
이칭/별칭 『포은선생문집』,『포은선생시권』,『포은선생시집』,『포은선생시고』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월드컵대로 462[초읍동 산51-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439년연표보기 - 포은시고 편찬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5월 6일연표보기 - 포은시고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포은시고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소장처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월드컵대로 462[초읍동 산51-1]지도보기
성격 고도서
저자 정몽주
편자 정종성
권책 2권 1책
행자 11행 18자
규격 28.6×18.2㎝
어미 상하내향화문어미(上下內向花紋魚尾)
권수제 포은선생문집(圃隱先生文集)
판심제 포은집(圃隱集)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정의]

조선 전기에 편찬되어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에 소장된 정몽주(鄭夢周)의 문집.

[개설]

정몽주는 일생 동안 수많은 문장과 시를 지었으나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곧 없애버리는 일이 많았고, 또 간혹 기록한 것이 있었으나 참화를 당했을 때 거의 다 없어져서 남아 있는 것이 적다. 포은시고(圃隱詩藁)는 포은(圃隱) 정몽주가 왕명을 받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것을 기록한 「봉사 대명 행록(奉使大明行錄)」과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그곳에서 지은 시들 및 국내에서 지은 각종 시를 그의 아들 정종성(鄭宗城)이 집록하여 편찬한 책이다. 임진왜란 이전의 판본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하여 2002년 5월 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저자]

정몽주[1337~1392]는 고려의 문신으로 본관은 영일(迎日)이며,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이다. 경상도 영천에서 출생하였다.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정운관(鄭云瓘)이다. 어머니 이씨(李氏)가 임신하였을 때 난초 분을 품에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리는 꿈을 꾸고 놀라 깨어나 낳았기 때문에 초명을 몽란이라 하였다가, 뒤에 몽룡(夢龍)으로 개명하고, 후에 다시 몽주라 고쳤다.

24세가 되던 1360년(공민왕 9)에 문과에 장원하였다. 당시 왜구에 의한 피해가 컸으므로 나흥유(羅興儒)에 이어 패가대(覇家臺)에 가서 왜구의 단속을 요청하였다. 이때의 일을 기록한 것이 「봉사 일본작(奉使日本作)」이다. 1389년(공양왕 1)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옹립하였으나, 정도전(鄭道傳) 등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책모가 있음을 알고 이들을 제거하려 하다가 도리어 이방원의 문객 조영규(趙英珪) 등에게 선죽교(善竹橋)에서 격살되었다.

1405년(태종 5)에 권근(權近)의 요청에 의하여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 부사 수문전 대제학 감예문 춘추관사 익양부원군(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修文殿大提學監藝文春秋館事益陽府院君)’에 추증되었으며, 1517년에 태학생(太學生) 등의 상서(上書)에 의하여 문묘에 배향되었다. 개성의 숭양 서원(崧陽書院) 등 13개 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영천의 임고 서원(臨皐書院) 등 몇 곳의 서원에 그의 초상이 봉안되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편찬/간행 경위]

정몽주의 문집은 1439년(세종 21)에 그의 아들 정종성에 의해 처음으로 간행되었고 1533년에 5세손인 정세신(鄭世臣)이 신계 군수(新溪郡守)로 있을 때 신계에서 중간(重刊)하고 선조 초에 한호(韓護)의 글씨로 개성(開城)에서 간행하였다. 이밖에 교서관(校書館)에서 활자로 간행한 것과 1585년(선조 18)에 영천(永川) 임고 서원에서 유성룡(柳成龍)이 발(跋)을 붙여 간행한 것 등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전의 판본들이며,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포은시고 역시 그러하다. 임진왜란 후인 1608년에는 정몽주의 7세손인 정응성(鄭應聖)이 황주(黃州)의 병영에서 간행하기도 하였다.

[형태/서지]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소장본인 포은시고는 28.6×18.2㎝의 목판본으로 2권 1책이며, 11행 18자의 상하 내향 화문 어미이다. 표제는 ‘포은선생문집(圃隱先生文集)’으로 되어 있으며, 1437년에 박신(朴信)이 쓴 서문 「포은선생시권서(圃隱先生詩卷序)」가 있다. 권수제(卷首題)는 ‘포은시고(圃隱詩藁)’이다. 하권의 말미에 이색(李穡)이 쓴 발문이 있으나 ‘잡저(雜著)’라는 편명 아래 「서강남기행시고후(書江南紀行詩藁後)」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권에 편록된 「봉사 대명 행록」에 대한 발문인 것으로 보인다.

[구성/내용]

정몽주가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지은 것을 그 아우가 초록한 「봉사 일본작」이 포은시고 1권의 말미에 ‘홍무 정사 봉사 일본 작(洪武丁巳奉使日本作)’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 1386년(우왕 12)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지은 「봉사 대명 행록」 및 그의 아들 정종성이 기록하여 두었던 것 등 전부 303수의 시가 포은시고에 포함되어 있다.

포은시고의 구성은 다소 특이하다. 대개의 경우 연보와 행장은 문집의 뒤에 있으나, 포은시고는 본문의 앞에 연보와 행장이 수록되어 있다. 표지에 이어 연보가 있고, 연보 다음에 박신이 쓴 서문인 「포은선생시권서」가 있으며, 서문 다음에 1410년에 정몽주의 문인인 함부림(咸傅霖)이 쓴 행장과 1439년에 정종성이 쓴 발문 및 1438년에 권채(權採)가 쓴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행장과 발문이 서문 앞에 있는 것도 이례적이다.

포은시고는 상하권이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권에는 명나라와 일본에 다녀온 사행(使行) 시에 지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지어진 시기로는 일본 사행 때 지은 「봉사 일본작」이 중국 사행 때 지은 「봉사 대명 행록」에 앞서지만, 「봉사 일본작」이 상권의 말미에 덧붙여진 형태로 수록되어 있다. 하권에는 국내의 기행시와 송시(送詩), 국내외 인사들과 주고받은 증시(贈詩)와 창화시(唱和詩), 각종 권자(卷子)에 붙인 제화시(題畵詩), 지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輓詩) 등에 이어 이색이 쓴 「서강남시고후」와 「포은재기(圃隱齋記)」, 「억정산기(憶鄭散騎)」와 「방포은선생구거소부(訪圃隱先生舊居小賦)」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에 소장된 포은시고는 1439년에 편찬 간행한 판본의 후쇄본이기는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에 인쇄된 것이 확실하고 동일 판본으로는 불과 몇 권만이 전해지고 있는 귀중본이다. 일반적인 문집의 구성 체계와 달리 연보와 행장을 앞세우고, 서문과 발문이 뒤섞여 편제되어 있어 서지학적으로도 검토를 요하는 문헌이다. 정몽주가 국내에서 지은 시들 중에는 일본의 사신으로 온 승려 영무(永武) 등에게 준 시와 일본에 여행가는 자휴상인(自休上人)에게 준 시가 포함되어 있어 여말선초의 한일 간 문화 교류의 단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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