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379
한자 朴英漢
영어음역 Bak Yeonghan
이칭/별칭 박민(朴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이순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인
성별
대표관직|경력 교사
출생 시기/일시 1917년 5월 12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6년 3월 5일 - 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경남여자중학교 교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9년 5월 5일 - 시집 『산역(山驛)의 밤』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51년 8월 - 경남여자고등학교 교사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3년 10월 - 부산여자중학교 교사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956년 8월 13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동래군 - 부산광역시 동래구
거주|이주지 부산 - 부산광역시지도보기
수학|강학지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360지도보기
수학|강학지 경성사범학교 - 서울특별시
활동지 부산고등여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1동 365지도보기
활동지 경남여자고등학교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5동 558지도보기
활동지 부산여자중학교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3가 60지도보기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활동 사항]

박영한(朴英漢)[1917~1956]의 다른 이름은 박민(朴民)으로, 1917년 5월 12일 경상남도 동래군[현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태어났다. 1936년 3월 5일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사범학교[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 연습과를 졸업하고 1946~1950년 경남여자중학교, 1951년 8월~1953년 9월 경남여자고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53년 10월 부산여자중학교로 옮긴 이후 부산 지역의 여러 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였다. 경남여자중학교에 재직할 때 동료 교사였던 소설가 오영수(吳永壽)와 교분을 쌓았다. 오영수가 시로 출발하여 소설 창작으로 나아간 데는 박영한의 자작 시편을 보고 자극을 받은 이유도 있었던 만큼, ‘과묵한 청렴의 선비’ 기상을 지닌 박영한의 시작 활동은 성격만큼이나 묵중한 데가 있었다.

광복기는 외부 문인의 유입과 청년 문사의 대거 등장으로 부산 문학계의 세대 구성이 한층 두터워진 시기였다. 『민주 중보』, 『인민 해방보』, 『문예 신문』, 『부산 일보』, 『부산 신문』, 『자유 민보』, 『산업 신문』 등의 신문과 『중성』, 『전선』 등의 잡지가 문학 작품의 발표 지면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이런 매체들에서 박영한의 작품을 발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적극적으로 문단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영수의 회고대로 “수초(水草) 속의 붕어같이 언제나 조용하고 찬찬한” 박영한의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1949년 염주용(廉周用)이 이끈 문예신문사에서 김수돈(金洙敦)의 『소연가(召燕歌)』[1947. 2]에 이어 박영한의 첫 시집 『산역(山驛)의 밤』[문예신문사, 1949. 5]이 출간된 것은 부산 문학사에 ‘시인 박영한’의 이름을 알리는 뚜렷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시집 발간 외에는 6·25 전쟁 시기에도 신문, 잡지에서 박영한의 이름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부산중학교김정한(金廷漢)과 박종우(朴鍾禹), 경남여자중학교김수돈오영수 등 교직에 몸담았던 문인들이 지역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광복기 부산의 대표적인 교사 시인이었던 박영한은 6·25 전쟁 무렵 신병(身病)을 앓아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1956년 8월 13일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1949년 첫 시집 『산역의 밤』이 출간되었다. 시집은 5부 25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록 작품들은 고루 높은 수준을 보인다. 3부 ‘도립 여학교(道立女學校)’의 몇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복 이후의 작품들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