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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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千祥炳 |
영어음역 | Cheon Sangbye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훈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활동 사항]
천상병(千祥炳)[1930~1993]은 1930년 1월 29일 일본 병고현 희로시(兵庫縣 嬉路市)에서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천두용이고 어머니는 김일선이다. 마산중학교 5학년이던 1949년 『죽순』에 「피리」, 「공상」을 발표하였다. 1950년 미국 통역관으로 6개월간 근무하기도 하였다. 1951년 부산으로 피란을 와 있던 서울대학교 상과 대학에 입학하여 1954년 수료하였다. 1964년 김현옥(金玄玉) 부산시장의 공보 비서로 약 2년간 재직하였다.
1967년 동백림 사건[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한 간첩단 사건, 동백림은 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에 연루되어 약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때 받은 육체적, 정신적 충격은 천상병의 삶과 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72년 친구 목순복(睦順福)의 누이동생인 목순옥(睦順玉)과 김동리(金東里)의 주례로 결혼하였다. 1993년 4월 28일 오전 11시 20분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의료원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 때 시 「피리」, 「공상」을 썼다. 1951년 송영택(宋永擇), 김재섭(金載燮) 등과 동인지 『처녀』를 발간하였다. 1952년 『문예』 신춘호 ‘신세대 사유’란에 「나는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다」가 실렸고, 11월호에 「사실의 한계-허윤석론」이 추천되어 평론가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1년 고문의 후유증과 영양실조를 앓던 중 행방불명되어 주변에서는 천상병이 죽은 줄 알고 유고 시집 『새』[조광출판사]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시집으로 『주막에서』[민음사, 1979],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오상출판사, 1984],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일선출판사, 1987], 3인 시집 『도적놈 셋이서』[인의, 1989], 시 선집 『귀천』[살림, 1989], 시 선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미래사, 1991], 『요놈 요놈 요 이쁜 놈』[답계, 1990], 『새』[답계, 1992] 등이 있다. 그 밖에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민음사, 1983], 문학 선집 『구름 손짓하며는』[문성당, 1985], 산문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강천, 1990]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93년 유고 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청산]가 발간되었다.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519-2 중산 관광 단지에 귀천 시비가 세워졌다. 2004년부터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천상병 예술제를 열고 있으며, 2009년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입구에 천상병 공원이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