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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371
한자 韓讚植
영어음역 Han Chansi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영도구 청학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모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인
성별
본관 청주
대표관직|경력 대양중학교 교사
출생 시기/일시 1921년 2월 1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6년 - 『운석』 동인이 됨
활동 시기/일시 1957년 - 『시 영토』 동인이 됨
활동 시기/일시 1958년 - 시 「섭리」 발표
활동 시기/일시 1959년 - 『서정시』 동인이 됨, 시 「하류」 발표
활동 시기/일시 1962년 - 『시기』 동인이 됨
활동 시기/일시 1964년 - 『계간 시 문예』 동인이 됨
활동 시기/일시 1965년 - 『신어』 동인이 됨
1974년 - 시집 『낙엽 일기』 발간
몰년 시기/일시 1977년 3월 13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8년 - 유고 시집 『다시 섬에서』 발간
출생지 함주 - 함경남도 함주군 상기천면 죽리 795
거주|이주지 부산 - 부산광역시 영도구 청학동지도보기
수학|강학지 명치대학 - 일본 도쿄도
활동지 대양중학교 - 부산광역시 영도구 남항동2가 236-4지도보기
묘소|단소 영락 공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두구동 1494-1지도보기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한유원이고, 어머니는 이원재이다.

[활동 사항]

한찬식(韓讚植)[1921~1977]은 함경남도 함주군 상기천면 죽리에서 1남 6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일본에 유학, 명치대학(明治大學)에서 3년간 공부하였고, 6·25 전쟁 때 부산으로 내려가 평생 동안 영도구 청학동에 살면서 대양중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56년 운석 동인을 시작으로 1957년 시영토, 1959년 서정시 1962년 시기, 1964년 『계간 시 문예』, 1965년 신어 등 여러 시 모임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한찬식이 활발하게 시작을 한 시기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로, 전장의 비참과 실존 감각을 주로 노래하였다. 전후 실존주의의 일정한 세례를 받은 한찬식은 인간 존재의 비극적 상황을 유동하는 액체로 표상하였다. 유년의 고향은 훼손되기 이전의 세계로 시적 기저를 이루었다. 실향 의식이 한찬식을 시인이 되게 이끌었는데, 타향에서의 삶 속에서 삶의 순금 같은 부분이 한찬식의 고향 의식이다. 시대에 대한 비판과 한탄, 삶의 허무를 견디면서 모더니즘적인 부정 의식의 시 작업을 견지하였으나 때 이른 죽음으로 시업을 지속하지 못하였다. 1977년 3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1958년 『자유 문학』에 시 「섭리」를, 1959년 같은 잡지에 시 「하류」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낙엽 일기』[연문출판사, 1974]가 있다.

[묘소]

한찬식의 묘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두구동 1494-1번지 영락 공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한찬식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뒤에 유족들이 유고 시집 『다시 섬에서』[시문학사, 1978]를 발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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