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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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聖大 |
영어음역 | Ha Seongda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수영동 229-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명희 |
[정의]
조선 후기 경상 좌수영에서 근무한 영리(營吏).
[가계]
본관은 진양(晋陽). 부인은 손씨(孫氏)다. 김종직(金宗直)의 제자였던 할아버지 하백연(河白淵)이 무오사화[1498]에 연루되어 영천으로 귀양 갔다가 그곳에서 죽자 하성대(河聖大)의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고향인 진주로 향하다가 창녕 술정리[현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에 눌러앉았다. 이후 진양 하씨(晋陽河氏) 술정파(述亭派)는 창녕의 이족(異族)으로 세를 떨치게 되었다.
[활동 사항]
하성대는 창녕의 호장(戶長) 및 이방(吏房)을 지낸 가통을 이어 경상 좌수영의 영리(營吏)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동래 지역에 머무르면서 각종 공문서와 개인 글을 남겼고, 이후 고향에 돌아가 노년을 보낸 듯하다. 『연조 귀감 속편(掾曺龜鑑續編)』 하성대 전기에 따르면, “공손하고 검소하며 문식(文識)이 있고 청렴한데다 절개가 높아 칭송을 들었다. 오랜 관직 생활 후 부모가 연로하다는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서는 부인 손씨와 더불어 18년간 하루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을 만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부모가 죽은 후에는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3년간 시묘를 하였다. 하성대의 넉넉한 성품과 지극한 효행이 아름답게 여겨져 그 행적이 영(營)에 보고되었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하성대는 수영리(水營吏)로 근무할 때 작성한 공문서 및 개인적인 편지 등의 초안을 모아 『술정집(述亭集)』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