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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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述亭集 |
영어음역 | Suljeongjip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진 |
[정의]
조선 후기 경상좌수영에 입번한 수영리 하성대(河聖大)가 지은 문집.
[저자]
『술정집(述亭集)』의 저자인 하성대에 대해서는 그가 창녕의 향리였다는 것과 18세기 후반에 경상좌수영에 수영리(水營吏)로 입번(入番)하였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가 작성한 고문(告文)에 ‘기묘(己卯)’라고 명시된 것으로 보아, 1759년에 수영에 입번해서 근무하였음이 확인된다.
『술정집』에는 하성대가 좌수사를 대신하여 작성한 「신병사휘응주답패(申兵使諱應周答牌)」가 실려 있는데,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780년(정조 4) 12월 21일조에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가 하직하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하성대는 1780년에도 경상좌수영에 근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술정집』에는 창녕 향리로 근무하는 아들에게 충고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인 「기아배등개견(寄兒輩等開見)」이 있는데, 이를 통해 하성대의 아들 역시 향리였음을 알 수 있다.
『연조귀감 속편(掾曺龜鑑續編)』에 실려 있는 하성대의 전기에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문재(文才)가 있다. 동래영에 속역(屬役)되어 있으면서 청렴함으로 칭찬을 받았다. 연한이 차므로 어버이의 늙음을 들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18년 동안 지성으로 어버이를 공양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통해 하성대의 성품이 공손하고 겸손했다는 것과 효성이 지극했다는 것, 그리고 비교적 수를 누렸다는 것 등을 알 수 있다.
[편찬/간행 경위]
『술정집』은 윤용출, 김현구, 김동철, 장동표, 이훈상 등이 주축이 된 조선 후기 사회사 연구팀에서 창녕에 거주하고 있는 하상현(河庠鉉)을 통해 입수한 하성대의 글들을 정리해, 1989년 6월 여강출판사에서 영인 출판한 것이다. 여강출판사에서는 이때 『술정집』 외에 『내부 일기(萊府日記)』, 『다대진 공문 일록(多大鎭公文日錄)』, 『장관청 선생안(將官廳先生案)』, 『별군관청 외 선생안(別軍官廳外先生案)』, 『교련청 선생안(敎鍊廳先生案)』, 『작대청 외 선생안(作隊廳外先生案)』 등과 합본해서 『동래 사료(東萊史料)』 제1책으로 영인 출판하였다.
[형태/서지]
필사체 영인본 4책으로 이루어진 『동래 사료』 제1책의 일부이다. 『동래 사료』1은 23.0×15.5㎝ 크기의 양장본이며, 이 가운데 『술정집』에 해당되는 부분은 66면이다.
[구성/내용]
『술정집』은 계초(啓草)와 기문(記文), 축문, 제문, 서간 및 시(詩) 외에 고문(告文)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간문과 시는 의성의 별장(別將) 김형도(金亨道), 문소의 별장 오명억(吳命憶), 오명억의 동생인 의성 이방(吏房) 오계조(吳啓兆) 등의 입직 향리들과 주고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의의와 평가]
『술정집』은 창녕의 향리로서 좌수영의 영리로 입번한 하성대의 문집이므로, 하성대가 경상좌수영에 입번한 18세기 후반의 향리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유익한 자료이다. 실제로 하성대의 서간문에는 문소의 별장 오명억과 오명억의 동생인 오계조, 그리고 오계조의 아들인 영찰(營察) 오시익(吳時益) 외에 의성에서 온 별장 김형도 등과 주고받은 서찰들이 있다. 이는 경상도에서 안동과 의성 등지의 특정 이족(吏族)이 감영리(監營吏)를 독점했던 실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좌수영 군관청 중수기(左水營軍官廳重修記)」와 「수영방 성조 축문(水營房成造祝文)」 등은 지역 관아의 축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어 향토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