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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동 송씨 할매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335
한자 水營洞宋氏-堂山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Ritual for Grandma 'Songssi' at the Guardian Tree of the Town in Suyeong-dong
이칭/별칭 수영 고당,산정머리 할매당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수영동 229-1]
집필자 황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5일 오전 10시
신당/신체 제당|둑신기|위패|당산나무
제당 건립 시기 1592년 이전 - 구전 자료
제당 신축 시기 1981년 4월 - 제당 신축
의례 장소 제당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229-1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수영동 송씨 할매 당산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 오전 10시에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229-1번지에 있는 제당에서 1년에 한 번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수영 고당’, ‘산정머리 할매당’ 등이라고도 한다. 특이한 점은 송씨 할매와 더불어 둑신[纛神]을 모시고 있다는 점이다. 마을 수호신으로 둑신을 모신 경우는 여타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로 민속 문화적 가치가 크다 할 수 있다.

마을 수호신인 송씨 할매[일명 고당]를 모시게 된 연유는 구전 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일제 강점기에 수영동에 송씨 할매라는 분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송씨 할매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일본군의 희롱을 받게 되었는데, 송씨 할매가 이에 굴하지 않고 일본군과 대적하여 싸워 그들을 물리쳤다 한다. 이러한 일이 마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뒤 송씨 할매가 죽게 되자 마을 주민들이 송씨 할매의 장한 정신과 용맹을 기리기 위해 제당을 세워 송씨 할매를 마을 수호신으로 좌정시키고 매해 제의를 베풀었다 한다.

송씨 할매의 영험함에 대한 구전 자료 역시 전하는데, 어느 해 마을 주민 중 박씨 성을 가진 이가 당산제를 모시고 사나흘 뒤에 자신의 집에서 키우던 개를 묶어 개장사에게 팔았다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박씨가 죽을 때 꼭 개가 죽는 형상으로 죽었다 하는데, 이를 마을 사람들은 당산제를 지낸 후 정신을 모으고 행동을 바르게 하지 못해 부정을 탄 결과라 여기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제당의 연원에 대해서는 제당 오른쪽에 오석으로 된 비석에 기록되어 있는 「수영고당(水營古堂)의 유래(由來)」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1592년(선조 25) 이전이니 창건은 역사상으로 볼 때 400년 정도로 추측되며 당시 수영성민은 성내 수호신으로 토지지신과 둑신을 병사(竝祀)하였다. 장구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약 30년 전 애향인 김기배씨에 의하여 중수하였으나 다시 폐패(廢敗)되었으므로 1981년 4월 김기배씨 자진(自進) 신축에 착수하여 6월 완공을 보게 된 것이다. 고당 완공에 즈음하여, 고당이 말끔히 신축됨에 우선 수영 주민으로서 김기배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조상께서는 유택으로 가시고 이곳 수영 산정에는 낙락장송만이 서 있네. 부디 원하건대 토지지신과 둑신이시여 조국의 무궁한 번영과 안가태평을 굽이 살피옵소서. 조상들이 남기신 유산을 우리들은 영원불멸토록 길이 보존하리라. 1981년 6월 25일 김병근 짓고 쓰다.”

수영동의 당산 나무는 곰솔나무인데, 그 연원은 당산 나무 앞에 있는 「부산 수영동 곰솔」이라 쓴 입간판에 기록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나무는 오래된 큰 나무[老巨樹]로서 부산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류다. 나이는 400년 이상이며 키가 22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가 4.1m이고 가지 퍼짐은 동서로 19m, 남북으로 21.7m이다. 조선 시대 이곳에 좌수영이 있을 당시, 이 나무에 신이 들어 있다고 믿어 군신들이 나무로 만든 군선(軍船)을 보호하고 무사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며 신성하게 여겼던 나무다.”

고당 안의 위패에 기록된 신격은 세월 따라 변모하였는데, 1969년에는 ‘토신주위(土神主位)’, ‘둑신주위[纛神主位]’였던 것이 1972년에는 ‘둑신주위’는 없어지고 ‘토신주위’만이 ‘주신지위(主神之位)’로 바뀌었다. 1981년에는 성주신당(城主神堂)에 둑신기[纛神旗]가 세워져 있고 둑신묘[纛神廟]에는 아무 것도 없다가, 이후 ‘수영성내수호신지신위(水營城內守護神之神位)’, ‘둑신지신위[纛神之神位]’ 지방으로 바뀌었으며, 둑신기도 제자리에 세워져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송씨 할매당은 수영 사적 공원 안의 수영성 남문 안에 있다. 제당의 형태는 기와 팔작지붕에 벽돌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한 형태이다. 제당은 두 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른쪽 칸은 ‘수영성내수호신당’이고, 왼쪽 칸은 ‘둑신묘’이다. 제당 안에는 시멘트로 만든 제단이 있다. 둑신묘 안의 제단에는 ‘둑신지신위[纛神之神位]’라 쓴 지방이 위패함에 붙어 있고, 그 앞에 향로 1개가 얹혀 있으며, 왼쪽 바닥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을 그린 직삼각형의 누런 둑신기가 세워져 있다. 수영성내수호신당의 제단에는 ‘수영성내수호신지신위(水營城內守護神之神位)’라 쓴 지방이 위패함에 붙어 있다. 제당의 왼쪽으로 8m 지점에는 목신(木神)으로 섬기는 곰솔나무가 있다.

[절차]

수영동 송씨 할매 당산제를 주관할 제주를 선정한다. 제주는 당산제를 지내기 한 달 전에 마을 어른들이 모여 집안에 길흉사나 부정이 없고 생기복덕이 좋은 이를 가려 선정한다. 제주로 선정된 이는 제의를 모시기 3일 전부터 제의 후 1주일간 부정 타지 않도록 금기한다. 당산제의 제의 절차는 성주 신당[송씨 할매제]→ 둑신묘[둑신제]→ 곰솔나무[당산 나무]제 순이다. 이 마을의 경우 당산제의 제의 절차가 세월 따라 변모하였는데, 1969년 이전에는 산신제→ 둑신제→ 먼물샘제→ 거릿대제 순으로 모셨으나, 1969년에는 산신제→ 둑신제→ 당산 나무제 순으로, 1972년에는 송씨 할매제→ 산신제→ 거릿대제 순으로 모셨다. 그리고 1981년 이후에는 송씨 할매제→ 둑신제→ 목신제 순으로 제의를 베풀었다.

당산제에 올리는 제물은 메, 찐 닭, 나물, 대어, 과자류, 편, 술, 과일, 눈이 붙어 있는 명태 등이며, 제물을 진설하는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동일하다. 제의를 모신 후에는 마을 노인들이 함께 모여 음복한다. 당산제의 제물의 경우 집안에 부정이 있는 이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예전에 이 마을에서는 당산제를 모신 후 마을 회의를 개최하여 한 해 동안의 마을 살림살이에 대해 의논하였으나, 근자에는 이런 행사를 행하지 않는다.

[현황]

예전에는 수영동 송씨 할매 당산제를 섣달 그믐날 자정에 행하였으나, 근자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 오전 10시 무렵에 행한다. 당산제 때 제의를 올렸던 먼물샘은 1967년 구획 정리 사업으로 샘이 메워져서 현재에는 샘 자리만 남아 있다. 당산제에 소요되는 경비는 마을 유지들이 ‘제만비’를 내어 충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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