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245
한자 歲寒堂
영어의미역 Sehan-dang Hall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신반송로 182번길 24[반송동 14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진상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재실|강당
양식 팔작 기와 목조 건물
정면칸수 5칸
측면칸수 2칸
소유자 남원 양씨 문중
관리자 남원 양씨 문중
건립 시기/일시 1840년 4월 22일연표보기 - 반송 삼절사의 강당으로 신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9년 5월~1990년연표보기 - 개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39년 - 반송 삼절사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6년 5월 29일 - 반송 삼절사,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호로 지정
현 소재지 반송 삼절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143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에 있는 조선 후기 반송 삼절사의 강당.

[개설]

세한당(歲寒堂)임진왜란 때 탁월한 충절을 보인 양지(梁誌)양조한(梁潮漢), 양통한(梁通漢) 등 세 명을 모시는 사당인 반송 삼절사(盤松三節祠)의 강당이다.

[위치]

세한당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143번지, 반송 삼절사 경내에 위치한다.

[변천]

1839년(헌종 5)에 동래 사림의 제의로 반송 삼절사가 건립된 후, 이듬해인 1840년(헌종 6) 4월 22일에 조정의 윤허를 받아 반송 삼절사의 강당인 세한당이 신축되었다. 이때 경상 좌수사의 허락을 받아 경상 좌수영의 금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 완공하였으며, 당시 동래부(東萊府)의 관청과 주민들이 낸 찬조금이 모두 395냥 3전이었다. ‘세한당’이란 현판은 동래 부사 정현덕(鄭顯德)이 직접 쓴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사당에 대한 탄압이 심하여 마을 서당으로 사용되었으며, 광복 이후에 다시 위패를 봉안하고 사당으로서의 기능을 되살렸다. 6·25 전쟁 당시에는 좌익 세력의 토론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후 1989년 5월에 개건을 시작하여 이듬해에 준공하였다.

[형태]

현재의 세한당은 1989년에 개건한 조선 시대의 건물 양식인 팔작 목조 기와 건물로,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다.

[현황]

현재 세한당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남원 양씨(南原梁氏) 문중이다. 1986년 5월 29일에 세한당을 포함한 반송 삼절사 건물 전체가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세한당은 한말 임진왜란의 충절 인물들을 모시고 있는 부산 지역 주요 사당의 강당이다. 따라서 세한당을 통하여 당시 전투 상황과 지역 토호로서의 역할, 그리고 사당의 양식을 알 수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