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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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社稷洞石社主山堂山祭 |
영어의미역 |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Sajik-dong Seoksamaeul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석사로18번길 27-3[사직1동 74-35] |
집필자 | 류승훈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1동 석사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사직동 석사 주산 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하루 자정에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1동 74-35번지에 있는 석사(石社) 주산당(主山堂)에서 마을 수호신을 모시고 동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석사 마을은 사직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이다. 사직동은 동래부에 세워진 사직단(社稷壇)에서 따온 마을 명칭이다. 옛날 선조들이 이곳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을 때부터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신단을 두었다고 한다. 옛 제당은 사직동의 동쪽 야산 위에 있었는데 1976년 마을의 중앙에 지금의 제당을 다시 만들었다. 당산제가 끝나고 돌무더기에서 거릿대제를 하는데, 그 연유는 당산을 지키는 노파의 현몽 때문이었다. 즉, 당산을 지키는 노파가 어느 날 ‘세 돌 옆에 사람이 죽었으니 그 돌을 모아 제를 지내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이러한 현몽으로 인하여 당산제 때 돌을 모아 제사를 올리던 것이 거릿대제가 되었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석사 주산당에서 모시는 수호신은 할매신으로서 인근의 여고(余古) 주산당에서 모시는 할배신과 서로 마주하고 있다. 중건한 석사 주산당은 사직1동의 마을 중앙에 있다. 제당은 8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형상의 2층 건물이다. 2층 제당 8각 벽면의 둘레는 16.8m, 높이는 10m로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 건물 상부는 팔모지붕의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벽은 블록을 쌓아서 시멘트로 마감하였다.
입구의 문은 철제로 제작하였고, 문 위에는 주산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제단 위에는 ‘주산신위(主山神位)’라고 쓴 목제 위패가 위패함에 들어 있다. 제단은 시멘트 콘크리트 제단이며, 제단 아래 벽장에는 제구가 들어 있다. 제당 밖 왼쪽에는 ‘석사부락수호신지(石社部落守護神趾)’와 오른쪽에는 ‘석사성황당중건비(石社城隍堂重建碑)’ 등 비석 2개가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석사성황당중건비’에는 제당이 중건된 배경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동래의 고명은 장산국(萇山國) 혹은 내산국(萊山國)이요, 신라에 와서는 거칠산군(居漆山郡)으로, 그 후에는 동래현 동래부 동래군으로 불렸다. 이곳 석사(石社)라는 지명은 기록상으로 조선조 말기에 처음 보이었으나 더 멀리 고려조에 벌써 우리 선조들이 주거의 터전으로 잡았다고 추측된다. 주변에는 산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그칠 새 없이 흘러 농사를 지으면 풍년이요, 자손을 낳으면 효자 열녀였다. 이렇듯 대대로 복록을 누리면서 낙토(樂土)로 가꾸어 왔던 것이다. 1945년 일제 식민 정책에서 해방된 후에 심기일전하여 사직동이라고 개명하였다. 그러던 것이 최근 도시 인구의 팽창으로 1974년 사직 지구 구획 정리 사업을 끝내고 지금은 마을 주변의 농토와 야산까지 뭉개어져 주택이 들어서 인구 밀집 지역으로 되었다. 이런 격변 속에 사직동, 즉 석사 부락 당산의 성황당은 낡아서 허물어지고 신목도 도시 공해로 말미암아 말라 죽게 되었다. 예로부터 성황당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집인 바, 주민 단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여 공동체 의식을 고조했을 뿐 아니라, 또한 정초에는 마을의 안과태평을 빌던 곳으로 소박한 토속 신앙의 대상물이었다. 이렇게 마을을 위하고 자손을 위해 정성들여 기원했던 것을 그 누가 어리석다 하리오. 여기 마을의 뜻있는 사람이 모여 의논한 끝에 우리 선조들의 소박한 마음씨를 되찾아 보고 기리자는 뜻에서 성황당을 중건하기에 이르렀다는 경위를 적어 두는 바이다. 1976년 4월 23일 박진주(朴辰柱) 지음”
[절차]
석사 주산당 당제는 예전에는 음력 9월 9일에 마을 제사를 지냈지만 현재는 정월 초하룻날 자정에 지낸다. 제관은 제일 2개월 전에 석사 농우회 회원 가운데에서 선정하며, 제관으로 선정되면 음력 2월말까지 금기를 지켜야 한다. 당산제는 주산당제와 거릿대장군제 등의 순으로 한다. 제물로는 돼지머리를 사용하며, 그 외 제물의 종류는 집안에서 하는 기제사와 흡사하다. 거릿대장군제는 ‘석사 부락 수호신지’ 비석 앞에서 지낸다. 당산제가 끝나면 음복을 하고, 제물은 제관의 집으로 가져와 마을의 어른들을 모시고 함께 먹는다.
[축문]
산신 축문과 거릿대 장군의 축문은 아래와 같다.
“유 세차 ◯◯일월◯◯초일일 ◯◯유학 ◯◯◯ 감소고우/ 연년세세 호호갹출 소제신당 목욕정화/ 원월초일 지성치제 복걸[산신, 장군]/ 제요거해 천재운소 백복운흥 일동/ 안과 서민태평 근이청작 서수지천신/ 상향(維 歲次 ◯◯一月◯◯初一日 ◯◯幼學 ◯◯◯ 敢昭告于/ 年年歲歲 戶戶醵出 掃除神堂 沐浴井華/ 元月初日 至誠致祭 伏乞[山神, 將軍]/ 除妖去害 天災雲消 百福雲興 一同/ 安過 庶民太平 謹以淸酌 庶羞祗薦神/ 尙饗).”
[현황]
사직동 석사 주산 당산제는 과거와는 달리 제관뿐만 아니라 몇 명의 주민까지 참석하여 지낸다. 제수 경비는 석사 농우회 기금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