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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의 생산 도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157
한자 統一新羅時代-生産道具
영어의미역 Production Tools of the Unified Silla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도헌

[정의]

통일 신라 시대 부산 지역에서 물품을 만드는 데 사용한 도구.

[개설]

통일 신라 시대에는 안정된 사회 분위기와 귀족 문화가 형성되면서 수공업이 발달하였고 생산 도구도 더욱 다양해졌다. 그러나 통일 신라 시대의 생산 도구가 삼국 시대와 완전히 달랐던 것은 아니고, 삼국 시대의 생산 도구를 계승하면서 용도에 따라 세분되거나 개량된 형태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통일 신라 시대에는 불교가 성행하면서 건축과 조각 등의 불교 예술품을 많이 제작하였고, 이와 관련된 수공업과 생산 도구가 발달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통일 신라 시대의 생산 도구 가운데 개량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철제 농구인 쟁기를 들 수 있다. 쟁기는 삼국 시대부터 사용하였지만, 통일 신라 시대가 되면 쟁기의 보습에 볏[보습 위에 비스듬하게 덧댄 쇳조각]이 부착되는 변화가 확인된다. 쟁기에 볏이 부착되면서 기경(起耕)[논밭 갈이] 작업의 효율성이 향상되었는데, 이러한 사례를 통해 통일 신라 시대의 생산 도구가 삼국 시대의 생산 도구보다 개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통일 신라 시대의 불교 예술품 가운데에는 석탑(石塔)과 부도(浮屠)[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탑], 마애불(磨崖佛)[자연 암벽에 부조(浮彫) 또는 음각으로 조각한 불상]처럼 돌로 만든 것이 많다. 이러한 조각품 제작은 석공(石工)이 담당하였는데, 석공은 쇠로 만든 정과 망치 등의 도구를 사용하였으며 불교 조각품 외에 주춧돌과 석재(石材) 제작과 같은 건축 공사도 담당하였다.

또한 통일 신라 시대에는 금동 불상과 범종(梵鐘)[절에 매달아 놓고 대중을 모이게 하거나 시각을 알리려고 치는 종] 등의 주조품(鑄造品)[금속을 녹여 거푸집에 부어 만든 물건]도 많이 제작하였으므로 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공방(工房)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공방에서는 진흙이나 밀랍으로 만든 틀과 적당한 크기의 도가니, 철제 집게 등의 도구를 사용하였다.

[부산 지역의 생산 도구]

통일 신라 시대의 부산에서 사용하였던 생산 도구 역시 앞에서 살펴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부산에서 출토된 통일 신라 시대의 생산 도구는 거의 없다. 다만 안평리 유물 산포지에서 조사된 통일 신라 시대의 논을 통해 부산에서도 쟁기와 괭이, 호미 등의 생산 도구를 사용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임석 유적에서 확인된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 가마와 기장 체육관 부지에서 조사된 통일 신라 시대의 기와 가마를 비롯하여 동래읍성지노포동 유적 등에서 출토된 통일 신라 시대의 기와와 토기, 나무 두레박 등의 유물을 통해 부산에서도 물레와 타날(打捺) 도구, 와통(瓦桶)[기와를 만들어내는 틀], 자귀 등 여러 생산 도구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통일 신라 시대의 불교 조각품인 범어사 삼층 석탑과 범어사 석등을 통해 부산에서도 통일 신라 시대에 정과 망치 같은 석공 도구의 사용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 단야구(鍛冶具)의 존재를 고려하면 통일 신라 시대의 부산에서도 단야구를 비롯하여 다양한 생산 도구를 사용하였다고 파악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통일 신라 시대 때 부산 지역에서 사용된 생산 도구는 관련 자료가 적어 구체적인 특징을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통일 신라 시대 부산의 생산 도구는 삼국 시대의 생산 도구를 계승, 발전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고, 기술 발달에 따라 일부 도구는 개량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통일 신라 시대에는 불교 예술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여 석탑과 불상 등의 불교 예술품을 제작하는 데 사용하는 생산 도구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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