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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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有路 |
영어음역 | Jo Uro |
이칭/별칭 | 은동,조경현(趙庚鉉),조천필(趙天弼),이소헌(耳笑軒),조유로(趙有路)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모룡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아동 문학가.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어릴 때 이름은 조은동, 호적명은 조경현(趙庚鉉), 자는 천필(天弼), 아호는 이소헌(耳笑軒), 필명은 조유로(曺有路)이다. 아버지는 일제 말기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金九) 아래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던 조규철이다.
[활동 사항]
조유로(曺有路)[1930~2004]는 부산제2공립중학교[현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동아대학 법정학부를 중퇴하고 교사, 신문 기자, 부산문화방송국 기획 위원 등으로 일하면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였다. 1957년 『자유 신문』 신춘문예에 시 「굴뚝의 윤리」가 당선되었고, 이듬해 『동아 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자유 신문』에 동화가 당선되어 화려하게 등단하였다. 등단과 더불어 첫 시집 『부동항』[1958년]을 펴냈고, 1961년 두 번째 시집이자 동시집인 『하아얀 칠판』을 발간하였다. 그 후 지속적으로 동시집을 발간하였으니 시에서 동시로 문학의 본령을 바꾼 것이었다.
조유로는 동시와 시를 구분하지 않았다. 또한 실험 정신이 강하여 다양한 형식-형태적 미, 암시의 강조, 시각적 여백, 리듬을 변주하였다. 하지만 언어의 해체와 기호 도입 같은 극단적인 형식은 취하지 않았다. 문학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서 형식과 내용의 일탈을 꾀하였던 것이다. 미완의 실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조유로의 문학은 특히 ‘동심파시’에 대한 주장으로 아동 문학사에 남았다. 2004년 3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첫 시집 『부동항』[1958]을 시작으로 『하아얀 칠판』[1961], 『산 넘어 온 편지』[1963], 『제목이 없는 동시』[1964], 『씨씨한 시집』[1965], 『노리개 실은 화물선』[1966], 『고만큼 조만큼』[1967], 『부산 부두에 오면』[1972], 『그래요 그래서』[1974], 『나달은 없어도 해는 갔다더라』[1981], 『그 달이 방금』[1989] 등을 남겼다. 동화집으로는 『시인 아저씨와 흰 곰』[1968]이 있고, 편저 『한국 동심 문학 대표 작가 선집 해바라기의 합창』[1971], 공저 『한 알의 밀알』[1983]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86년 제6회 이주홍 아동 문학상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