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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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鎭文 |
영어음역 | Gim Jinmun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종우 |
[정의]
6·25 전쟁 이후 부산 지역에서 실내악·관현악의 부흥을 이끈 음악가이자 교육자.
[활동 사항]
김진문(金鎭文)[1929~1995]은 1929년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다. 마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예술대학[현 음악대학]에서 수학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끝을 맺지는 못하였다. 전쟁으로 부산에 온 김진문은 초창기 부산 지역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실내악·관현악 발전에 공헌하였다. 바이올린 독주회·피아노 트리오·현악4중주 등의 실내악과 부산시립교향악단 창단 멤버의 악장으로서 관현악 연주 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1951년 ‘이상근 작곡 발표회’에서 소나티나를 연주하였고, 1955년 오태균(吳泰均)이 지휘하는 부산대학관현악단에서 제1바이올린 차석을 필두로, 1956년 오태균 주도의 부산실내악단 제1회·제2회 연주, 1957년 제1회 독주회에서 「멘델스존 협주곡」·「베토벤 Spring Sonata」를 연주하였다. 동년 제2회 부산교향악단 연주, 1958년에는 상록음악동호회 연주, 1964년에는 부산피아노트리오 연주, 1965년에는 부산현악4중주단 연주 등 실내악 운동을 전개하였다.
1968년에는 프랜드실내악단을 창설하여 연주하였고, 1962년에는 부산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하여 연주하며 악장도 맡아 1980년까지 활동하는 등 실내악과 관현악 운동에 혼신의 열정을 다 바쳤다. 또 1971년 11월 29일에는 유정해(劉正海)의 반주로 「프랑크의 소나타」를 중심으로 한 제2회 독주회를 열었고, 1972년 9월 9일에도 유정해의 반주로 「그리그의 소나타」를 중심으로 제3회 독주회를 여는 동시에 지방 순회 연주회를 가졌다.
김진문은 음악 영재 교육에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많은 영재들을 길러 냈다. 현재 김진문의 제자들은 대부분 음악 대학에서 후진들을 양성하거나, 뛰어난 연주 활동으로 대한민국 음악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1995년 12월 4일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972년에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