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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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廣域市立博物館所藏金銅如來坐像 |
영어의미역 | Gilt-bronze Seated Buddha Statue, Collection of the Busan Metropolitan City Museum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동 948-1]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조원영 |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4동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 시대의 금동 여래 좌상.
[개설]
금동 불상이란 청동제 불상 표면에 도금한 불상을 말한다. 청동 불상 표면에 도금하는 일은 불상이 장엄해 보이는 효과도 있겠지만 그보다 교리적인 배경이 더 중요하다. 곧 부처가 갖춘 32길상(吉相) 가운데 금색상(金色相) 또는 장광상(丈光相) 등에 그 근거를 둔다. 우리나라에서 금동 불상이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는 6세기를 하한으로 삼고 선사 시대의 청동기 제작 기술의 발달상 또는 고분 출토품 등을 참고하여 5세기경, 빠르면 4세기 말경에도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금동 불상은 불교 전래 이후 삼국 시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제작되어 우리나라 불상 조각 연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형태]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금동 여래 좌상(釜山廣域市立博物館所藏金銅如來坐像)은 총 2구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금동 여래 좌상①의 높이는 21㎝이다.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높은 육계(肉髻) 위에 2중의 정상 계주(頂上髻珠)를 표현하였다. 또한 머리와 육계 사이에도 계주를 새겼다. 목에는 삼도가 또렷하며 얼굴은 넓고 눈, 코, 입은 다소 작게 표현하였다. 우견 편단(右肩偏袒)의 옷차림으로 오른쪽 어깨에 옷자락이 걸쳐 있는데, 옆구리 쪽으로 내려오는 옷자락이 파손되었다. 길상좌(吉祥坐)의 자세로 오른손은 촉지인(觸地印), 왼손은 설법인의 수인(手印)을 취하고 있다. 대좌는 위에는 앙련, 아래에는 복련을 새긴 연화 대좌이며 연잎은 복판으로 표현하였다.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금동 여래 좌상②의 높이는 19.5㎝이다. 본래 금동불이었으나 지금은 전면에 금 도금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머리는 나발이며, 높은 육계 위에 2중의 정상 계주를 표현하였다. 눈은 반개하였으며, 좁은 인중에 귓불과 턱이 비교적 긴 편이다. 목에는 삼도의 표현이 없다. 법의는 우견 편단인데, 오른쪽 어깨에도 대의 자락을 걸쳐 옷 주름 표현은 사실적이지 않다. 대좌는 위에는 앙련, 아래에는 복련을 새긴 연화 대좌이며, 연잎은 복판으로 표현하였다. 두 불상 모두 광배는 없고 얼굴은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며, 우견 편단의 옷차림이지만 오른쪽 어깨에 옷자락을 걸친 형식도 동일하다.
[특징]
2중 정상 계주 표현은 부산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으로 우리나라 전통 방식의 육계 형식과 다른데, 이와 유사한 형태는 역시 고려 시대 작품인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扶餘無量寺五層石塔)[보물 제185호]에서 발견된 여래 좌상에서도 나타난다. 육계 형식의 이러한 상이성은 고려 후기에 보이는 라마 불상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가 된다. 또한 이런 육계는 인도 파라 조(朝)의 불상이나 네팔의 불상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라마 불상 양식은 고려 후기 불·보살상에 영향을 미쳤지만, 고려 불상 양식의 테두리 안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날 뿐 기본적인 조형에 변형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따라서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금동 여래 좌상 2구도 머리 형태에서 일정하게 라마 불상 양식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고려 시대의 불상 양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금동 여래 좌상 2구는 전체적인 면에서는 인중이 좁고 넓은 턱이 표현되어 있으며, 입이 작게 표현된 점 등 상호의 표현에서나 옷차림의 처리에서 고려 시대의 양식을 보여 주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중첩된 정상 계주의 표현을 보면 몽골 침입 이후의 작품임을 알 수 있으며, 라마 불상 양식의 특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불상 양식의 변천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