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4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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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有旨-將軍簡札 |
영어의미역 | Writings for Strategies and Letter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진상원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에 거주하는 권경민이 소유한 권응수(權應銖) 장군의 유품.
[개설]
‘유지 및 장군 간찰(有旨및將軍簡札)’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권응수[1546~1608]가 남긴 것으로, 1980년 8월 23일 보물 제668-5호로 지정된 고문서 33매이다. 이 고문서를 남긴 권응수는 1584년(선조 17)에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경상도 영천과 문경, 밀양 전투 등에서 승리하고, 창암에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부대를 대파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1·2차 울산성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으로 선무 이등공신으로 책록되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으며 좌찬성으로 추증되었다. 이 고문서들은 부산광역시 북구에 거주하고 있는 후손인 권경민이 소장하던 것들로, 현재는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위탁 보관하고 있다.
[형태]
모두 긴 사각형 모양이지만 크기가 각각 다르다.
[구성/내용]
고문서 33매로 유지 국왕의 명령문 28매와 표문(票文) 1매, 장군의 편지 4매이다. 국왕의 명령문은 1594년부터 1606년(선조 39) 사이에 작성한 것들이다. 이중 정유재란이 발생하였던 1597년(선조 30) 5월 14일의 명령문 내용을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방금 관찰사 이용순(李用淳)의 장을 보니 그대가 자신의 집에서 경작한 곡식 200석을 관(官)에 바쳤다고 하는데, 그대는 자신이 장군으로서 나라를 위해 적을 토벌하는 일을 맡고 있으면서도 그 여력(餘力)을 이용해 자신의 땅을 경작해 곡식을 관에 바쳐 군량미에 도움을 주니 가상하도다. 이에 옷감[表裏] 1벌[襲]을 하사하니 받아라.”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활약상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