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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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鏡虛堂惺牛大師影幀 |
영어의미역 | Protrait of Monk Kyougho-dang |
이칭/별칭 | 「경허당 대선사 진영」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미경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에 소장된 개항기 고승 성우(惺牛)의 영정.
[개설]
고승 진영(高僧眞影)은 덕 높은 승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경허당 성우대사 영정(鏡虛堂惺牛大師影幀)」은 한국 근대 불교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경허당(鏡虛堂) 성우[1849~1912]의 영정이다. 성우는 전주 태생으로 속명은 송동욱(宋東旭)이다. 13세에 경기도 광주 청계사에 출가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계허(桂虛)를 은사로 삼고 동학사 만화(萬化) 강백(講伯)에게 불교 경론과 유학, 노장 사상 등을 고루 배웠다. 이후 개심사·해인사·범어사·석왕사 등 여러 곳에서 선풍(禪風)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1900년 경허의 범어사 참선 결사 이후 범어사는 1910년 한국 불교의 선종 수사찰로 인정받는가 하면, 선찰 대본산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성우는 만년에 온갖 만행(萬行)을 베풀다가 1912년 함경도 갑산 도하동에서 64세로 입적하였다.
[형태 및 구성]
「경허당 성우대사 영정」의 크기는 세로 119.5㎝, 가로 81.6㎝로 면 바탕에 채색을 베풀어 그렸다. 화면은 크게 2단으로 구분하여 상단은 화문이 그려진 벽면과 서책·경물 등을 나타내고, 하단은 바닥을 나타내었다. 대사는 실내 바닥에 정면을 향하여 앉아 있는 가부좌한 모습으로, 회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오른손은 주장자를 꽉 쥔 채 무릎위에 올렸고, 왼손은 가사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화면 왼쪽의 상단 뒤로는 경상(經床) 위에 향연(香煙)이 놓이고 그 옆으로 서책이 높게 쌓여 있다. 바닥에는 전통 장판지의 무늬가 선명하며 그 위에 초화문이 희미하게 선염(渲染)된 방석을 깔고, 벽면에는 큼직한 꽃문양이 그려져 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세로로 길게 구획을 마련하여 ‘중흥조도 대진종풍 경허당 대선사 진영(中興祖道大振宗風鏡虛堂大禪師眞影)’이라는 제명(題名)이 적혀 있다.
[특징]
「경허당 성우대사 영정」은 바닥에 가부좌한 평좌상으로는 드문 정면 전신 가부좌상이다. 기골이 장대한 체구와 두 눈을 바로 뜨고 정면을 응시하는 강직한 눈이라든가 연회색 장삼에 걸친 강렬한 홍색 가사는 마치 대사의 의지를 나타내는 듯 인상적이다. 특히 굳게 다문 입술과 풍부한 수염, 주장자를 꽉 쥔 손 등에서 근대 선풍을 일으킨 중흥조로서의 강직함과 당당한 면모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모란이 그려진 벽면과 경상 위에 놓인 향로·서책 등은 승방을 그대로 재현한 듯하다. 대사가 앉은 전통 황색 장판과 경상이 놓인 마룻바닥 등 사실적인 표현은 근대기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경향이다.
[의의와 평가]
「경허당 성우대사 영정」은 20세기 초 침체된 불교에 선풍을 일으킨 중흥조의 진영으로서 더욱 의미가 깊을 뿐 아니라, 화풍상 근대적 회화성이 강한 작품으로 고승 진영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