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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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東卨永世不忘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Tablet of Yi Dongseol |
이칭/별칭 | 행현감 이공동설 영세불망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차성로417번길 35[교리 6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오인택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기장 현감 이동설(李東卨)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이동설 영세불망비(李東卨永世不忘碑)는 1647년(인조 25) 처음 세웠는데, 1831년(순조 31) 봄에 비가 훼손되자 이동설의 후손들이 자금을 모아 가을에 새로 세웠다.
[위치]
이동설 영세불망비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 62번지 기장 향교 앞에 있다.
[형태]
직육면체 석재 비석으로 자연석의 받침돌 위에 비를 세웠으며, 윗부분은 둥근형이다. 비의 앞면에는 1647년 당시 기장 현감 이동설의 공적을 새겼고, 뒷면에는 기존의 송덕비가 훼손되어 1831년 새롭게 건립한 과정을 기재하였다. 비의 크기는 높이 83㎝, 너비 33㎝, 두께 9㎝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행현감 이공동설 영세불망비(行縣監李公東卨永世不忘碑)’라는 비제(碑題)와 함께 “깊으신 은혜로 폐막을 없애시니/ 동향(桐鄕)에 자애하심 남기셨네/ 성실과 근면으로 학문을 보위하니/ 그 치적 문옹(文翁)과 나란하다네[恩深祛瘼 愛遺桐鄕 誠勤衛學 治竝文翁]”라고 적혀 있다.
뒷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순치 정해년[1647]에 향교에서 세운 비석이었다. 그러나 도광 신묘년[1831] 봄에 갑자기 엎어져 깨지는 변고를 당하였다. 그래서 온 고을의 노소(老少)들이 모두 말하기를 ‘세월이 멀어지고 사람은 사라져, 공론(公論)으로 다시 세우고자 해도 의론이 한결같이 못하다. 그러니 후손 된 자가 먼저 주창하여 주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하였다. 이에 공의 증손 사근(思根)과 득중(得中)이 많은 자금을 모연(募緣)하여 석공을 부르고 일을 감독하여 이해 초가을에 본래 자리에 봉안하였다. 앞면의 글자 모양은 옛 비석의 것을 본떠 썼다[順治丁亥 自校中立矣 逮至道光辛卯春 偶値顚破之變 而一鄕老少咸曰 世遠人亡 因公更竪 議論不一 莫如爲其血煦者 先倡周旋云 故曾孫思根得重 募緣鴻財 招工監事 是年初秋 奉安於本址 而前面字樣 依舊書之]”
[현황]
이동설 영세불망비는 부산광역시 기장군이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지방관의 송덕비 건립이 유행하던 시기가 18~19세기인 점을 감안하면 이동설 영세불망비는 상당히 이른 17세기 중엽에 건립된 송덕비의 사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