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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 흥학평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040
한자 李奎鉉興學坪
영어의미역 Monument for Yi Gyuhyeon’s Promotion of Learning
이칭/별칭 부사 이공규현 흥학평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명륜동 23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오인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송덕비
관련인물 이규현(李奎鉉)
재질 석재
크기 125㎝[높이]|48~44㎝[너비]|20㎝[두께]
건립 시기/일시 1825년연표보기 -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22년연표보기 - 이규현 동래 부사 부임
현 소재지 동래 향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235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 있는 조선 후기 동래 부사 이규현(李奎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이규현 흥학평(李奎鉉興學坪)은 1825년(순조 25) 동래 부사 이규현이 100두락(斗落)[마지기]의 경지를 동래 향교에 매입해 준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동래 향교에서 세웠다.

[위치]

이규현 흥학평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235번지 동래 향교에 있다.

[형태]

비의 재질은 석재이며, 비석 머리는 사각이다. 받침돌이 있으며, 머릿돌은 없다. 비의 앞면 중앙에 제액을 새겼고, 뒷면에는 비석을 세운 사연과 관련 인물의 직책 및 성명을 기재하였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부사 이공규현 흥학평(府使李公奎鉉興學坪)’이라는 비제(碑題)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 “임오년[1822]에 공이 부임하였을 때는 교궁(校宮)을 옮겨 지은 다음이었고, 비축된 재물은 텅 비어 있었다. 공은 학문을 진흥할 뜻이 있어 재정을 털어 일을 추진하였다. 다음 해에 웃들[上坪]을 매입하고 또 이듬해에 아래들[下坪]을 매입하여 교궁의 둔전(屯田)으로 하였으니, 전후로 개간한 땅이 모두 일백 두락이나 되었다.

아! 이 땅은 교궁과 시작과 끝을 같이할 것이고, 또한 이 비석은 이 땅과 시작과 끝을 같이할 것이다. 공의 맑으신 덕도 이 비석과 함께 영원토록 닳지 않으리라. 우리 동래 사람들이 공을 추모하는 것이, 어찌 다만 현산(峴山)의 타루비(墮淚碑) 비석 하나에 그치겠는가?

도광 을유년[1825] 동지, 문우해 삼가 적음. 상평 도감 신태정, 하평 도감 문만빈, 표석 도감 손성일, 향교 별임 곽상낙[歲壬午 公下車時 校宮承移建之後 財儲枵枵然 公有志興學 捐廩料理 越明年買上坪 又明年買下坪 俾作校宮屯土 前後所墾 凡一百斗落 於戱此坪 將與校宮 而相終始 此石又將與此坪 而相終始 公之淸德 亦將與此石 而永世不泐 萊人追慕爲 啻如峴山一片石而已哉 道光乙酉 冬至 文禹海謹識 上坪都監 辛台鼎 下坪都監 文萬彬 標石都監 孫星馹 鄕校別任 郭相洛].”

[현황]

이규현 흥학평은 동래 향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규현 흥학평은 1825년에 세운 동래 부사의 송덕비로, 공덕 내용이 상세히 기재된 지방관 송덕비 유형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또 1825년 무렵 동래 부사가 재정난을 겪고 있던 동래 향교에 100두락을 마련해 주었다는 기록을 통해 당시 동래 향교 재정 규모를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 『부산 금석문』(부산광역시·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2)
  • 부산광역시청(http://www.busan.go.kr)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8.02 오탈자 수정 1821년 -> 1822년 흥학명 -> 흥학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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