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9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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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弘仁旌閭碑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for Honoring the Virtue of Seo Hongi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 56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영옥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서홍인(徐弘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조선 후기 기장현 상서면(上西面)에 살던 서홍(徐弘)은 60리나 떨어진 부산까지 군역의 임무를 수행하러 다녔다. 군역에 복무하는 동안 낮에는 번을 서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였다. 이 같은 효행이 널리 알려져 조정에서 직첩(職帖)을 내려 군역을 면제해 주고 정려를 내렸다. 정려비와 정려각은 서홍의 효심에 감동한 당시 부산 첨사가 세웠다. 정려각은 1754년(영조 30) 12월 중수하였고, 1959년 5월 20일 다시 세웠다. 정려각의 편액은 ‘효자 서홍지려(孝子徐弘之閭)’로 되어 있으나 『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 『기장군읍지(機張郡邑誌)』, 『영남읍지(嶺南邑誌)』 기장현조 등에는 서홍이 ‘서홍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치]
서홍인 정려비(徐弘仁旌閭碑)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 562-1번지 구노실 마을 앞에 위치한다. 철마면사무소에서 마지 마을 방향으로 450m 정도 가면 왼쪽에 있다.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 철마농산농협교육장 가는 길 어귀이다.
[형태]
정려비의 크기는 높이 80㎝, 너비 57㎝, 두께 22㎝[또는 83㎝, 65㎝, 14㎝]이다. 연황색의 석재(石材)에 귀부(龜趺)와 이수(螭首) 없이 사각형의 비신(碑身)만 세웠고, 그 위에 맞배지붕의 비각을 설치한 형태이다. 비문의 글씨는 해서체이다.
[금석문]
비문은 ‘효자(孝子)’ 외의 글자는 마모되어 내용을 판독할 수 없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정려각 편액에 “효자 서홍지려 숭정 기원 후 사갑술 십이월 일 중수(孝子徐弘之閭 崇禎 紀元後 四甲戌 十二月日 重修)”라 적혀 있고, 정려각 상량문에 “구 단기사이구이년 기해 오월 이십일 무진 사시 견주 룡 계해 유월 이십팔일 중수(龜 檀紀四貳九貳年己亥五月二十日戊辰巳時堅主 龍 癸亥六月二十八日 重修)”라고 되어 있다.
[현황]
서홍인 정려비는 1959년 5월에 재건되었으나, 관리 주체인 부산광역시 기장군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산비탈의 논가에 방치되어 있다. 앞에 기와 가마와 공장 건물이 있어 찾기 힘들다. 비각은 콘크리트로 벽을 쌓아 보수하였으나 몹시 퇴락한 상태이어서, 이대로 계속 두면 유일하게 판독 가능한 비문인 효자 두 글자마저 마멸될 우려가 있어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다. 서홍인 정려비 서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지점에 연구리 폐고분(連龜里廢古墳)이 있다.
[의의와 평가]
서홍인 정려비는 지역 효자의 행적을 알 수 있어 현대인에게 교감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