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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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寅浩淸德善政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Tablet of Gim Inho |
이칭/별칭 | 수상 김공인호 청덕선정비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수영동 229-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신명호 |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개항기 경상 좌수사 김인호(金寅浩)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경상 좌수사는 조선 시대 경상 좌수영의 최고 사령관이다. 경상 좌수영은 조선 건국 후 부산포에 설치되었다가, 울산 개운포(開雲浦)로 옮겼다. 임진왜란 직전 다시 울산 개운포에서 동래 해운포로 옮겼고, 임진왜란 후인 1636년(인조 14) 감만포로 옮겼지만 16년 후인 1652년(효종 3) 다시 동래 해운포인 오늘날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으로 옮겼다. 이후 1895년(고종 32) 7월 군제 개편으로 경상 좌수영이 혁파되기까지 240여 년간 경상 좌수영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자리하였다.
경상 좌수영에는 최고 사령관인 무관 정3품의 경상 좌수사 휘하에 종3품의 부산 첨사·다대 첨사·서생 첨사, 종4품의 포이포 만호·두모포 만호·개운포 만호·서평포 만호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건립 경위]
김인호는 1884년(고종 21) 11월 12일 경상 좌수사에 임명되었으나, 임명된 지 반년여 만인 1885년(고종 22) 6월 휘하 장수들의 근무 평정을 잘못한 죄로 파직되었다. 하지만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명성과 공적이 뛰어나므로 다시 기회를 주자는 의정부의 건의에 따라 1885년 8월 다시 경상 좌수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1886년(고종 23) 3월 친군영 별장(別將)에 임명되어 경상 좌수사에서 교체되었다가 다시 경상 좌수사에 재임명되었고, 1887년(고종 24) 1월 17일 친군영 별장에 임명되면서 경상 좌수사에서 교체되었다. 비는 1887년 4월 김인호가 경상 좌수사에서 교체된 지 3개월 뒤에 세웠다.
[위치]
김인호 청덕선정비(金寅浩淸德善政碑)는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229-1번지 수영 사적 공원에 있다.
[형태]
비석의 몸돌과 받침돌만으로 구성된 간단한 형태이다. 비의 크기는 높이 129㎝, 너비 47.5㎝, 두께 14㎝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수상 김공인호 청덕선정비(水相金公寅浩淸德善政碑)’라는 비제(碑題)와 함께 “구천 냥 재정을 덜어 스물하나 진보에 혜택을 베풀었다. 실마리를 찾아 보충해 주니 저절로 많고 적음의 균형이 맞았다. 우뚝한 제방은 소공이 쌓은 것과 같고 둔전법을 시행함에 제갈량을 본받았다. 적자를 보호하여 파랗게 살려 내니 은혜가 바다처럼 넓도다[捐廩九千 施惠卄一 充補就緖 自辟疏鬱 堤屹蘇公 屯遵諸葛 活靑保赤 恩與海濶]]”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숭정 기원 후 다섯 번째 정해년[1887] 4월 일에 세움[崇禎紀元後五丁亥 四月 日 立]”이라고 되어 있다.
[현황]
김인호 청덕선정비는 훼손된 부분이 거의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부산광역시에서 소유하여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