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8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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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汝漢 |
영어음역 | Hong Yeohan |
이칭/별칭 | 도가(道可),모담(慕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범방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용범 |
[정의]
조선 후기 김해 부사를 지낸 부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도가(道可), 호는 모담(慕潭). 시조는 고려 때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이고, 5대조는 숭록대부(崇祿大夫)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 홍언수(洪彦修)이며, 증조 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홍형노(洪亨老),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홍잠(洪潛)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증된 홍만복(洪蔓復)으로 자는 익보(益普), 호는 남재(南齋)이다.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의령 남씨(宜寧南氏)로 남귀린(南貴麟)의 딸이다. 남동생은 홍유한(洪裕漢), 홍기한(洪起漢), 홍국한(洪國漢)이다. 모두 가선대부 품계를 받았다.
[활동 사항]
홍여한(洪汝漢)[?~1662]은 1661년(현종 2) 4월 3일 김해 부사로 부임하여 이듬해 2월 4일 관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해읍지(金海邑誌)』에는 홍여한의 묘가 김해부 남면 범방리 뒷산 자좌(子坐) 언덕에 있어, 후손들이 범방에 많이 살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홍여한이 1647년(인조 25) 광양 현감, 1652년(효종 3) 진도 군수, 1654년 부산 첨사, 1656년 양주 목사, 이듬해 부호군이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홍여한의 묘비명에는 김해 부사만 지낸 것으로 적혀 있어 『승정원일기』에 실린 인물과 같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묘소]
홍여한의 묘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범방 마을 금병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홍여한의 8~9세손들이 1929년 3월 묘비를 세웠다. 묘비를 다시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작은 비갈(碑碣)이 있었으나 이끼에 글자가 지워지고, 백에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였기에 새로 세우기로 하고, 9세손 홍인석(洪仁錫)이 김해의 유림인 허채(許埰)에게 요청하여 명문(銘文)을 썼다”라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