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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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潛 |
영어음역 | Hong Jam |
이칭/별칭 | 영민(永敏),우헌(寓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용범 |
[정의]
조선 전기 부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영민(永敏), 호는 우헌(寓軒). 남양 홍씨(南洋洪氏) 우헌 문중의 시조이다. 기록에 따르면 증조할아버지는 홍언수(洪彦修)이고, 할아버지는 홍약(洪約)으로 두 사람 모두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아버지는 대호군 홍형노(洪亨老)이다. 부인은 숙부인 김씨(淑夫人金氏)로, 이조 참의 김덕신(金德信)의 딸이다. 아들은 홍만복(洪蔓復)으로, 자는 익보(益普)이고 호는 남재(南齋)이다. 가선대부의 품계를 받았다고 묘갈명에 적혀 있다. 홍잠의 후손들은 손자 대부터 김해부 태야면[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범방 마을]에서 남양 홍씨 우헌 문중을 이루어 세거하였다. 자손 중에서 김해 부사와 여러 명의 가선대부가 나왔고, 효행 정려를 받아 김해 지역의 세도가로 뿌리를 내렸다. 현재 13대 종손인 홍병주[녹산농협 초대 조합장]가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범방 마을 장전 부락에 살고 있다.
[활동 사항]
홍잠(洪潛)[1524~1589]은 1576년(선조 9) 병자 식년시에 생원 3등으로 급제한 뒤 통정대부로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다. 청백리로 명성을 얻었으나 1589(선조 22)에 극언 상소를 하였다가 김해부로 유배되었다. 풀려난 지 5일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 김해 생림면 안양산(安養山) 자락에 묻혔다.
[묘소]
홍잠의 묘는 현재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범방 마을 금병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예조 판서와 규장각 직제학을 지낸 숭정대부 홍순형(洪淳馨)이 묘갈명을 지었다. 묘갈명에 따르면 홍잠은 김해 고을에서 받들어 장지를 마련하고, 장례는 강원도장(江原道葬)으로 치렀다. 묘갈명의 내용을 통해 홍잠의 높은 인품을 엿볼 수 있다.